"이건 파당 정치의 폐단을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의 반대로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 비준안이 최근 부결되자 이렇게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누려 온 리더십이 공화당측의 방해로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된 만큼 그의 거친 반응은 이해할 만하다.

일부 미국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클린턴의 "레임덕 콤플렉스"와 연계시키고
있어 흥미를 끈다.

임기가 1년 4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은 클린턴으로서는 "레임덕"이라는 말을
충분히 떠올릴 만한 때가 됐다는 얘기다.

클린턴은 지난 6년여의 집권 기간 중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위기의 순간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절묘히 활용해 위기를 벗어
났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모니카게이트"로 사임 일보직전의 위기에까지 몰렸을 당시 그는
전격적인 이라크 공습 지시로 국면을 전환하는 정치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통상교섭 신속처리 법안(패스트 트랙) 등 각종 입법 사항이 의회의 반대로
시련에 봉착했을 때는 대통령 고유의 거부권을 적절히 활용하며 위기를 헤쳐
왔다.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의 이런 정치 테크닉을 그가 골프장에서 애용하는
멀리건에 빗대 풍자하기도 했다.

멀리건이란 티샷을 실수한 골퍼에게 다시 한번 샷을 날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정정당당함과 매너를 중시하는 골퍼들에게 멀리건을 쓰는 것은
수치다.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멀리건을 사양한다.

클린턴은 한번의 라운딩에서 대여섯번씩 멀리건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멀리건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한 몇차례의 실수는 별로 신경 쓸 게 없다.

클린턴의 멀리건 남용은 "현직 대통령의 끗발"과 무관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여름 클린턴을 만난 자리에서 "사람들이 현직
대통령일 때나 당신을 챙겨주지 백악관에서 물러나면 멀리건 인심을 후하게
주지 않을 것"이라며 "퇴임후를 대비한 골프를 치라"고 충고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클린턴은 대통령 특권을 동원한 국면 전환용 조치라는 "정치적 멀리건"으로
각종 위기를 미봉해 왔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레임덕에 접어든 시점에서 터져나온 이번 CTBT 부결 파동은 클린턴에게
"권력은 유한하다"는 불변의 명제를 곱씹게 할 것 같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