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부통령 당선] '사실상 대통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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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53) 민주투쟁당(PDIP)당수가 21일 5년 임기의
인도네시아 부통령으로 당선됐다.
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MPR)는 이날 메가와티 당수와 통일개발당의 함자
하즈 등 2명의 부통령 후보를 놓고 투표를 벌여 3백96대 2백84로 메가와티를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메가와티는 전날 선출된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감안할 때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향후 인도네시아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온 메가와티가 "대통령급 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폭동과 시위사태는 일단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메가와티는 당선 직후 "하느님에 감사한다. 인도네시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선거는 전날 대통령 선거의 복제판이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선거 직전에 후보들이 "줄사퇴"하는 해프닝이 또 다시
벌어졌다.
전날 대선 후보로 나왔던 아크바르 탄중 골카르당 당수는 이날도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이를 다시 철회했다.
위란토 군 총사령관도 국민주권당과 국민협의회 의원들의 추천으로 부통령
출마선언을 했다가 다시 이를 번복, 출마를 포기했다.
국가 지도자를 결정하는 대통령.부통령 선거에서 이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
이 연이틀 벌어짐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심각한 선거 후유증을 앓을
전망이다.
특히 메가와티의 당선이 그가 당수로 있는 민주투쟁당의 자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골카르당을 포함한 여러 정파와 군부의 "묵인"내지는 "협조"없이는 당선이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메가와티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우선 메가와티는 민주투쟁당이 아닌 와히드 대통령의 국민각성당(PKB)
후보로 부통령 선거를 치렀다.
국민각성당의 부통령 출마제의를 수락, 당선된 그는 이미 전처럼
민주투쟁당의 당수만으로 남기가 어렵게됐다.
국민각성당으로 대변되는 이슬람세력을 대변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부통령 선거 직전 후보를 철회, 그에게 표를 몰아준 골카르당과 군부에
대해서도 "응분"의 대가를 지불해야할 형편이다.
인도네시아 정가에서는 이번 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골카르당과
메가와티측, 혹은 위란토와 메가와티측이 막후에서 협상을 진행중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특히 대통령선거에서도 후보를 내지 않은 골카르당과 군부가 부통령
후보도 내지 않은 것은 그만한 "대가"를 보장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관측이 사실이라면 향후 메가와티의 행보는 상당히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럴 경우 단기적으로는 메가와티 지지자들의 시위는 잠잠해질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여러 정파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도네시아 정국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게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대통령은 병약한데다 의회마저 절대 다수당이 없어 고질적인 정국불안
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 김선태 기자 orc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2일자 ).
인도네시아 부통령으로 당선됐다.
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MPR)는 이날 메가와티 당수와 통일개발당의 함자
하즈 등 2명의 부통령 후보를 놓고 투표를 벌여 3백96대 2백84로 메가와티를
부통령으로 선출했다.
메가와티는 전날 선출된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감안할 때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향후 인도네시아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온 메가와티가 "대통령급 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폭동과 시위사태는 일단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메가와티는 당선 직후 "하느님에 감사한다. 인도네시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선거는 전날 대통령 선거의 복제판이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선거 직전에 후보들이 "줄사퇴"하는 해프닝이 또 다시
벌어졌다.
전날 대선 후보로 나왔던 아크바르 탄중 골카르당 당수는 이날도 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이를 다시 철회했다.
위란토 군 총사령관도 국민주권당과 국민협의회 의원들의 추천으로 부통령
출마선언을 했다가 다시 이를 번복, 출마를 포기했다.
국가 지도자를 결정하는 대통령.부통령 선거에서 이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
이 연이틀 벌어짐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심각한 선거 후유증을 앓을
전망이다.
특히 메가와티의 당선이 그가 당수로 있는 민주투쟁당의 자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골카르당을 포함한 여러 정파와 군부의 "묵인"내지는 "협조"없이는 당선이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메가와티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우선 메가와티는 민주투쟁당이 아닌 와히드 대통령의 국민각성당(PKB)
후보로 부통령 선거를 치렀다.
국민각성당의 부통령 출마제의를 수락, 당선된 그는 이미 전처럼
민주투쟁당의 당수만으로 남기가 어렵게됐다.
국민각성당으로 대변되는 이슬람세력을 대변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부통령 선거 직전 후보를 철회, 그에게 표를 몰아준 골카르당과 군부에
대해서도 "응분"의 대가를 지불해야할 형편이다.
인도네시아 정가에서는 이번 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골카르당과
메가와티측, 혹은 위란토와 메가와티측이 막후에서 협상을 진행중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특히 대통령선거에서도 후보를 내지 않은 골카르당과 군부가 부통령
후보도 내지 않은 것은 그만한 "대가"를 보장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관측이 사실이라면 향후 메가와티의 행보는 상당히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럴 경우 단기적으로는 메가와티 지지자들의 시위는 잠잠해질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여러 정파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도네시아 정국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게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대통령은 병약한데다 의회마저 절대 다수당이 없어 고질적인 정국불안
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 김선태 기자 orca@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