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은행 전현직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문책을 받았다고 한다.

4명의 전직 행장등 모두 1백13명이 징계받았다니 우선 그 규모에 놀랄
일이다.

물론 형사고발 등에 비기면 경미한 조치라는 지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징계 대상자의 숫자만으로도 이번 조치는 금융계에 큰 충격이라고 하겠다.

때마침 정부는 22일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퇴출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부실 금융기관 임직원들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과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확정
했다고 한다.

또 국세청이 관련자들의 재산내역등 근거자료를 예금보험공사에 제공하는등
손해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들도 마련했다고 한다.

37명의 퇴출 종금사 임원들에 대해 이미 3백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압류하는
등 손해배상소송이 준비중이고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특별검사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문책조치와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될 지도 주목을 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세금을 부실 금융기관에 쏟아부은 만큼 부실을
초래한 당사자들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묻고 또 돈도 물어내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조치라 하겠다.

그러나 한빛은행 사례에서 보듯이 1개 은행의 징계 대상자가 1백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금융 부실이 과연 개인 차원의 문제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금감위가 이미 지난 7월 한빛은행에 대한 감사를 끝내놓고도 지금까지
고민해온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고 하겠지만 금융관행 자체가 잘못되어
있던 터에 개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의심스런게
사실이다.

물론 고의 또는 부정이 개재된 사례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결과적 부실대출"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논한다면 이는 대출기피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관치 금융이야말로 금융부실의 진정한 뿌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금 은행원들을 문책하고 희생시키는 것만이 능사인가하는 반문도 제기된다
고 하겠다.

구시대 금융의 고리를 끊겠다는 단죄의 논리도 옳다고 하겠지만 금융의
자율이 보장되고 금융기관 내부의 분명한 책임구조가 확립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을 당국자들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당장 대우문제만 하더라도 금융기관들은 스스로의 판단 보다는 정부의
생각을 따라야 하는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