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수도 자산이다 .. 이상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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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대표이사 >
얼마 전 일어났던 월성 원전 사고의 과정을 보고 한국의 조직문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실수가 전혀 용납되지 않는 한국의 조직문화에 대해서 걱정이
앞섰다.
원자력발전소 같은 중차대한 기간산업 시설에서는 물론 한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중대한 사건들이 보고 채널의 기본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어떻게
지나갔을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국에서는 민간기업 공기업 공공기관등 어느 조직에서든 부하들의 실수가
결코 용인되지 않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는 가설을 내세우면 그 원인을
찾을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한 조직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한 조직원이 소위
"다치는" 사례를 본다.
여기서 말하는 실수란 원래 나쁜 의도로 시작한 실수가 아니라 자기 소신
대로 옳게 또는 더 잘 하려고 하다 나타난 실수를 말하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갈파한 에디슨의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흔히 "정상적인" 실패 또는 실수 다음에 매우 큰 성공이 따라오는
휴먼 스토리를 보지 않는가.
실수가 없는 사람은 인간적으로도 맛이 없을 뿐만 아니라 크게 성공할 수도
없지 않은가.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실수나 실패나 있게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실수나 실패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도전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실패도 자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수업료를 물고 실패를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어느 기업의 이야기다.
신규사업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
회사는 엄청난 손해를 봤다.
담당자는 풀이 죽어 사표를 썼다.
사장은 그 사표를 되돌려 주었다.
사장은 "이 실패를 통해 우리는 많은 노하우를 배웠다.
손실금은 따지고 보면 투자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담당자는 용기를 얻었다.
그는 "실패사례"를 널리 알렸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회사는 이와 비슷한 다른 신규사업을 벌였다.
여기에 참가한 임직원은 실패의 전철을 피해나갔다.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실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조직에서는 조그만 실수도 보고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실수한 부하를 가혹하게 닦달하는 상관에겐 실수 사실을 쉬쉬하려 하게
마련이다.
조직엔 커뮤니케이션 단절현상이 생긴다.
그런 조직은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고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실수는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다.
단지 보고가 안 되고 있다는 것뿐 아닌가.
그런 경우 겉으로는 나타나는 실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을 속이면서
생활하는 것이나 아닐지...
필자는 각층의 많은 관리자들이 고의가 아닌 실수를, 특히 부하의 첫번째
실수를 용서함으로써 훌륭한 조직의 리더들을 키워나간 예를 많이 보았다.
이런 관리자들은 대개 첫번째 실수는 용서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때는 엄단하는 단호함도 가지고 있다.
반면 실수를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조직에서는 조그만 실수를 감추다보니
그 실수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
실수조차 감싸줄 수 있는 관리자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조직이 크든 작든 리더를 키울 수 있는
조직의 기본 조건이라고 본다.
실수가 용서되지 않는 이러한 우리의 조직 문화는 이미 어릴 때부터 우리
한테 배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랄 때부터 너무나 격렬한 경쟁의식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부모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실수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고 완벽함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어릴 때부터 너무나 판에 박힌 교육을 "완전"하게 받아 왔기 때문은 아닌가.
크고 작은 실수를 하는 우리 어린이들을 격려해 주고 용납하고 그런 어린이
들이 천진난만하게 저지른 실수를 통해서 산 인생의 교훈을 터득하게 하는
문화가 결여되어 있지는 않은가.
공식대로만 살고 행동하는 스테레오 타입형 인간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창조력이 더 없이 요구되는 21세기에 우리는 혹 실수를 조금이라도 하면
도태되는 사회를 만들어 우리 청소년들의 무한 창조의 가능성을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여러가지가 불현듯 생각난다.
지난번 원전 사고의 보고 채널이 반드시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직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우리의 관리 방법도 실수나 실패가 용납되고 창조성이
있게 인재들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 samlee@korea.sun.com >
-----------------------------------------------------------------------
<> 필자 약력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미국 MIT 공학박사
<>미국 하니웰 반도체연구소 수석연구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3일자 ).
얼마 전 일어났던 월성 원전 사고의 과정을 보고 한국의 조직문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실수가 전혀 용납되지 않는 한국의 조직문화에 대해서 걱정이
앞섰다.
원자력발전소 같은 중차대한 기간산업 시설에서는 물론 한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중대한 사건들이 보고 채널의 기본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어떻게
지나갔을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국에서는 민간기업 공기업 공공기관등 어느 조직에서든 부하들의 실수가
결코 용인되지 않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는 가설을 내세우면 그 원인을
찾을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한 조직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한 조직원이 소위
"다치는" 사례를 본다.
여기서 말하는 실수란 원래 나쁜 의도로 시작한 실수가 아니라 자기 소신
대로 옳게 또는 더 잘 하려고 하다 나타난 실수를 말하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갈파한 에디슨의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흔히 "정상적인" 실패 또는 실수 다음에 매우 큰 성공이 따라오는
휴먼 스토리를 보지 않는가.
실수가 없는 사람은 인간적으로도 맛이 없을 뿐만 아니라 크게 성공할 수도
없지 않은가.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실수나 실패나 있게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실수나 실패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도전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실패도 자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수업료를 물고 실패를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어느 기업의 이야기다.
신규사업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
회사는 엄청난 손해를 봤다.
담당자는 풀이 죽어 사표를 썼다.
사장은 그 사표를 되돌려 주었다.
사장은 "이 실패를 통해 우리는 많은 노하우를 배웠다.
손실금은 따지고 보면 투자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담당자는 용기를 얻었다.
그는 "실패사례"를 널리 알렸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회사는 이와 비슷한 다른 신규사업을 벌였다.
여기에 참가한 임직원은 실패의 전철을 피해나갔다.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실수를 받아들이지 않는 조직에서는 조그만 실수도 보고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실수한 부하를 가혹하게 닦달하는 상관에겐 실수 사실을 쉬쉬하려 하게
마련이다.
조직엔 커뮤니케이션 단절현상이 생긴다.
그런 조직은 죽은 것이나 다를 바 없고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실수는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다.
단지 보고가 안 되고 있다는 것뿐 아닌가.
그런 경우 겉으로는 나타나는 실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자신들을 속이면서
생활하는 것이나 아닐지...
필자는 각층의 많은 관리자들이 고의가 아닌 실수를, 특히 부하의 첫번째
실수를 용서함으로써 훌륭한 조직의 리더들을 키워나간 예를 많이 보았다.
이런 관리자들은 대개 첫번째 실수는 용서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때는 엄단하는 단호함도 가지고 있다.
반면 실수를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조직에서는 조그만 실수를 감추다보니
그 실수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
실수조차 감싸줄 수 있는 관리자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은 그 조직이 크든 작든 리더를 키울 수 있는
조직의 기본 조건이라고 본다.
실수가 용서되지 않는 이러한 우리의 조직 문화는 이미 어릴 때부터 우리
한테 배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랄 때부터 너무나 격렬한 경쟁의식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부모들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실수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고 완벽함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어릴 때부터 너무나 판에 박힌 교육을 "완전"하게 받아 왔기 때문은 아닌가.
크고 작은 실수를 하는 우리 어린이들을 격려해 주고 용납하고 그런 어린이
들이 천진난만하게 저지른 실수를 통해서 산 인생의 교훈을 터득하게 하는
문화가 결여되어 있지는 않은가.
공식대로만 살고 행동하는 스테레오 타입형 인간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창조력이 더 없이 요구되는 21세기에 우리는 혹 실수를 조금이라도 하면
도태되는 사회를 만들어 우리 청소년들의 무한 창조의 가능성을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여러가지가 불현듯 생각난다.
지난번 원전 사고의 보고 채널이 반드시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내용과
직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우리의 관리 방법도 실수나 실패가 용납되고 창조성이
있게 인재들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 samlee@korea.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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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미국 MIT 공학박사
<>미국 하니웰 반도체연구소 수석연구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