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한국 문화에 대한 원려가 깊었던 한 주였다.

20일 문화의 날을 맞아 각종 축하행사가 열렸고 21세기 한국 문화 발전
방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31년째 지속되며 지난 21일 열린 "제37회 한.일 신문방송 편집간부
세미나"에서는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문호개방을 비롯해 문화 국제
교류에 대한 미디어의 역할과 올바른 보도 자세에 대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행사에서는 한국문화의 장래가 어두울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표출됐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문호 개방이 국내 관련 산업계의 전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은 한 예이다.

한국 문화가 위기에 처했다는 걱정은 크게 3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국경 없는 문화교류시대가 열린 가운데
취향이 비슷한 일본 대중문화까지도 거침없이 유입되면 한국의 문화산업은
괴멸될 지도 모른다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걱정이다.

둘째는 가속되는 글로벌라이제이션 현상 속에서 전통문화의 호소력이 저하
되며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마저 허물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즉 산업경제적 대외종속 뿐만 아니라 정신적 아노미현상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범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중산층 기반이 취약해지는 현상
속에서 퇴폐문화가 창궐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같은 걱정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큰 편이다.

일본이나 유럽의 영화업계가 미국의 헐리우드에 압도당해 자생력이 고갈되고
있는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이 일본 대중문화의 범람을 걱정하듯 일본이나 유럽은 미국 대중문화의
범람을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국가와 민족의 동류의식을 강조하던 문화활동은 이제 연령층별,
소득계층별, 종교분파별 동류의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변화해 가고 있음도
부인하기 힘들다.

즉 한국 또는 일본의 문화라는 식으로 나라별 특성을 인식하던 종래의
정체성 파악방식이 이제는 고령자 문화 대 10대 문화, 엘리트 문화 대
빈곤층 문화, 또는 가톨릭문화 대 회교문화 등으로 문화를 인식하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아울러 지식이 부가가치 창출의 최대 원천으로 부상하는 와중에 범세계적
으로 중산층이 위축되면서 극우 또는 극좌 등 펀더멘털리즘의 확산되려는
조짐을 보이는 것도 도외시할 수 없는 현실 문제가 돼 있다.

21세기 한국 문화계는 어떤 방향으로 생존을 모색할 것이며 한국인은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는 트로이의 목마식 대응이다.

이는 일본 영화업계의 대응방안이기도 하다.

즉 영화제작기술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이나 일본 등 영화계는
스토리와 시나리오를 갖고 헐리우드로 뛰어드는 것이다.

알맹이는 자국 것이되, 제작 기술과 장비는 헐리우드 것을 빌리는 형태다.

둘째는 보편화와 특화다.

즉 대중문화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세계적 보편성을 추구할 것이고 엘리트문화는 자신의 특성과 차별성을
더한층 강조하고 고급화 해 이방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셋째는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이 전통문화보다는 정치문화에 더 크게 좌우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장유유서와 우리됨 을 강조하는 현 지도계층의 정체성 강화 전략은
계약문화와 시민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는 현실과 다른 연공서열과 맹목적인 한국인됨을 강조하는 현 정치지도자
에 대한 젊은층의 거부감과 갈등이 증폭되면 될수록 가속될 것이다.

즉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역사를 공유한다는 점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느끼는
의식은 갈수록 희박해질 것이다.

오히려 합리적인 법과 계약 그리고 시민의식에 의해 국민 서로간의 갈등이
조정되면 될수록 또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정책이 강조되면 될수록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자신이 속한 국가에 대한 소속감
을 강하게 느끼고 이로써 국민적 정체감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문화가 바뀔 때 비로소 문화적 정체성도 공감될 것이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