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의 박기점(54) 회장에게 지난 19일은 뜻깊은 날이었다.

경기도 평택공장에 연간 5백만세트의 LCD(액정표시장치)용 백라이트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준공식을 가졌던 것.

단일공장으로는 세계최대 규모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외국에서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데서 탈피, 플라스틱 원료만 수입해서
제조하는 기술력을 확보한 게 양산체제를 가능케 했다.

회사의 주력사업도 커넥터에서 LCD용 백라이트로 바뀌게 됐다.

박 회장이 백라이트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96년.

커넥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유망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LCD에 빛을 공급하는 백라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기술개발은 어렵지 않았다.

모든 산업의 기초를 이루는 금형기술이 세계수준에 올라있었던 덕분이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종금사에서 자금을 빌려 집중투자를 했는데 IMF 관리체제가 닥치면서
자금회수에 시달려야했다.

마침내 우영의 기술력에 반한 대만의 투자금융기관인 CDC으로부터 1백억원의
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작년 11월 LCD용 백라이트를 연간 1백20만세트 생산할 수 있는 평택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악성 단기부채를 서둘러 갚고 남는 돈으로 다시 시설투자를 재개했다.

"기술은 시간 싸움입니다. 조금만 머뭇거려도 뒤따라옵니다"

개발에서 시설투자까지 2백10억원이 투자됐다.

LCD호황에 힘입어 물량을 댈 수 없을 만큼 주문이 몰려든 것도 시설확충
배경이다.

백라이트로만 올해 6백억원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총매출액의 절반가량이 되는 것이다.

확충된 공장이 풀가동되면 백라이트로만 연간 3천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개척자적인 기질이 강합니다. 항상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지요"(이효재
전무).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안정된
연구원 자리에 안주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맨손으로 시작했다.

전세자금을 빼서 창업자금을 마련했다.

서울 휘경동의 30평짜리 금형공장과 직원 3명.

금형업체로 성공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지난 82년 커넥터 시장에 진출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LCD용 백라이트의 뒤를 이을 평판디스플레이 EL(전계발광소자) 등 첨단
영상표시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92년 중국 심양에 공장을 설립할 때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가 중국에서 맨처음 시작한 것은 경로당과 유치원을 짓는 일이었다.

덕분에 손쉽게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중국 공장은 커넥터 생산의 80%를 책임질 만큼 "효자"가 됐다.

(02)512-6671

< 오광진 기자 kjo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