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첫 뉴스입니다. 오호츠크해에서 양식중이던 참치떼가 가두리 양식장
을 벗어나 자유수역으로 대량 유출돼 생태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
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2031년 7월 1일 정오뉴스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참치는 대표적인 난류성 어종.

그러나 한 유전공학 회사가 유전자 변형 기술로 북극의 추위에 내성을
갖도록 만들어 청정해역인 오호츠크해에서 양식을 해오던 중이다.

성장속도도 보통 참치에 비해 4배나 빠르다.

이 참치가 양식장을 벗어나면서 명태를 비롯한 한류성 어종들의 씨를
말리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오호츠크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북극해를 넘어 북대서양까지 세력을 떨치고 있어 생태계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 생태계의 혼란

이런 뉴스가 꼭 2031년에나 가야 나올까.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장부터가 문제다.

"유전자 변형 작물의 꽃가루가 시험재배지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영국의 BBC방송은 영국 중부 옥스포드셔 지방에서 테스트중인
유전자 변형 식물의 꽃가루가 시험재배지에서 4.5km나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채취됐다고 보도했다.

BBC는 유전자 변형 작물과 다른 작물간에 이화 수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 테스트가 실험실 밖으로 벗어났을 경우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
할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시는 "의사 웨스트나일바이러스"에 의한 뇌염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50여건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최소 27명이
감염됐다.

선진국인 미국의 최대 도시에 전염병이 돌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생물학적 테러의 가능성
때문.

뉴요커지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이 바이러스를 미국으로 옮겨 왔을
가능성을 우려해 미 중앙정보국(CIA)이 의도적인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문턱에서 발생한 이 두 사건.

유전공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수없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 소수기업의 특허 독점

영국정부 과학고문인 로버트 메이 경은 최근 영국 하원 환경감사특별위원회
에서 "유전공학이 핵무기 생화학무기 등과 연관을 맺으면서 악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 국토의 약 1.5배 크기인 8천6백만 에이커의 땅에서 유전자변형작물
이 재배되고 있다"며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엄격히 통제되지 않을 경우
급격한 감소세에 있는 조류와 곤충류 야생화 등과 같은 야생 동식물들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전자공학은 특허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갈등을 낳는다.

미국에서는 요즘 "미쓰킴 라일락"이라는 꽃이 인기다.

우리나라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이 꽃은 주한미군들의 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뒤 약간의 개량을 거쳐
날개돋친듯 팔리고 있다.

물론 특허도 따냈을 것이다.

한국산 꽃에 약간의 "보완"만을 더한 미국인들이 돈을 벌고 있다.

LG화학은 미국의 한 연구소와 함께 서부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타우마린이라는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단 맛이 나는 단백질을 개발했다.

세계 각국에서 특허도 따냈다.

설탕보다 10만배나 더 단 맛을 낸다니 앞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조상들이 타우마린을 발견했지만 서부아프리카 사람들의 손엔 한푼도
들어오는 것이 없다.

생명공학에서 특허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아기양 돌리를 만들어낸 스코틀랜드 연구팀도 복제 포유동물에 대해 배타적
인 소유권을 청구하는 특허를 냈을 정도다.

인간의 모든 염색체와 그 조합에 대해서까지 특허 청구가 잇따를 전망이다.

유전자에 대한 특허는 신의 영역에 있던 ''창조물에 대한 저작권''이 대기업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얘기다.

그것도 소수의 기업이 권리를 독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남북문제(빈부격차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신의
뜻이 소수기업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우생학의 제물

여기에 우생학이 고개를 든다.

유전공학이 인간의 질병과 장애를 퇴치하는데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인간 부류와 심지어 인종 청소까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구태여 나치의 전례를 들 필요도 없다.

스스로도 우생학의 제물이 된다.

자신이 못생기고 머리가 나빠 고생해도 자식들만큼은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게 인간의 원초적 본능.

새로 태어나는 어린이들은 유전공학의 힘을 빌어 모두 "아인슈타인의 머리"
에 "마릴린 먼로의 외모"를 띠게 된다.

판박이 인생이 몰려 사는게 미래의 지구촌이 되지나 않을까.

컴퓨터와 조합된 유전공학은 인간이 아닌 새로운 우월 종족을 창조하게
되지 않을까.

유전공학의 밝은 미래 뒷면에는 20세기 인간들로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어두움이 존재한다.

< 김정호 기자 j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