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빚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채권은행과 맺은 약속대로 연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낮추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기업 입장에서는 연말 부채비율 점검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을 태울 수밖에 없다.

대우사태가 증시침체로 이어져 증자여건이 악화된데다 자산매각 협상도
지지 부진해 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일단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수치를 맞춘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추진하는 재무구조개선노력이 자칫 기업경쟁력
을 저해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악화된 증자여건 =연말까지 서둘러 부채를 줄여야 하는 현대는 주식시장
침체로 증자 효과가 감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는 현대차 1조원 기아차 7천5백억원 현대중공업 4천억원 등 6,7개사
총 3조원 이상을 증시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현대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연말께 주식시장이 괜찮아지면 증자를 예정
대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증자계획을 세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5억달러규모의 주식예탁증서(GDR)를 15.85%의 할인율로
발행하는데도 애로를 겪었다.

LG는 11월중 상사와 건설이 각각 9백억원, 9백20억원의 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SK도 1조5천억원 가량의 증자가 예상돼 있다.

효성도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11월초 1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키로
했다.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증자를 추진하는 기업들은 주식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지켜 보며 적절한 증자 타이밍을 찾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코스닥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약 4천억원을 조달할 계획인
금호는 코스닥시장이 안정세를 유지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 서두르는 자산매각= 현대는 현대강관 대한알루미늄 현대엘리베이터
금강기획 등 20개를 매각하고 인천제철을 계열분리하는 방식으로 그룹
부채를 혁신적으로 줄여갈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현대는 지난해말 79개의 계열사가 26개로 줄게 된다.

막바지 협상이 진행중인 대한알루미늄 등 4,5개 업체에 대해서는 가능한한
연내 계약을 마무리하기 위해 매각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현대측은 전했다.

6월말 현재 부채비율이 3백71%인 쌍용양회는 쌍용정유 지분을 해외컨소시엄
에 9천억원에 매각하고 삼각지 부지(1천5백억)를 매각해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끌어내릴 계획이다.

이밖에 코오롱상사는 보유중인 신세기통신 지분을 미국 에어터치인터내셔널
사에 가능하면 서둘러 매각한다는 계획이다.

한화도 발전설비 부문 외자유치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연말까지 자산매각을 추진하는 대기업들은 시한에 쫓겨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설혹 어렵게 계약을 맺더라도 조건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대기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 투자 및 영업위축 우려= 대기업들은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의 투자도
모두 내년 이후로 미뤄 놓은 상태다.

투자를 할 수록 부채비율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보유 현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려는 현상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병욱 전경련 기업경영팀장은 "유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보유중인 현금으로
빚 갚는데 주력할 경우 자칫 흑자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기업은 운전 자금부담을 늘게 하는 외상판매를 연말까지 자제할 것을
영업부서에 지시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권오용 금호 상무는 "연말을 앞두고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무리하게 낮추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2백% 부채비율은 실세금리가 20% 수준일때 만든
기준인 만큼 환경변화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지적
했다.

< 이익원 기자 iklee@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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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비율은 ]

부채비율은 부채(빚)를 자기자본(밑천)으로 나눠 백분율한 값이다.

자기돈은 얼마인데 빌린 돈은 그 몇배가 되느냐 하는 의미다.

정부는 그동안 대기업에 대해 올 연말까지 "부채비율 2백%"를 맞추라고
요구해 왔다.

부채가 1조원일 때 자기자본은 5천억원인 기업을 만들라는 얘기다.

빚이 너무 많으면 외환위기 같은 외부의 쇼크앞에 기업이 쓰러질 수
있으므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선 부채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 정부측의
논리였다.

이는 대기업들이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는 차입위주 경영을 그만두고
핵심사업에 집중해 세계적인 기업이 되도록 하겠다는 정책적 목표를 구체화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빚을 줄이거나 자기자본을 늘리면 된다.

공장이나 부동산 등 자산을 팔아 빚을 갚거나 증자 외자유치를 해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다.

대우를 제외한 현대 삼서 LG SK 등 5대그룹은 연말까지 부채비율 2백%를
맞추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좋지 않아 증자가 쉽지 않아 일부 그룹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