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사업부문 등 자산을 외국에 파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둘이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데 있다.

외국 투자가들은 턱없이 싼 값을 부른다.

최근들어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는게 기업들 설명이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발전설비 부문의 외자도입을 추진해온 김승연 한화 회장도 비슷한 경우를
여러 차례 겪었다고 소개했다.

또다른 고충은 여간해서 협상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계열사 지분의 해외매각을 추진중인 모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서너개 외국 투자사가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한결같이 서두를게 없다는 입장이어서 마음을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투자가들은 "한국에서 벌이는 투자 비즈니스는 시간을 끌수록
유리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 기업이 불리한 협상을 하게 되는 것은 연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
이내로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금융제재를 받게 된다.

자칫 개혁에 반발했다는 심판을 받고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

물론 기업들도 빚을 줄여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그렇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막무가내로 자산을 팔수 없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채권 은행들도 이런 기업의 입장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

그런대도 정부는 여전히 2백%의 잣대를 들이대며 기업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대기업이 연말까지 약속을 지키려면 무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헐값에라도 서둘러 자산을 넘겨야 한다.

시장 여건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유상증자도 실시해야 한다.

증자는 결국 출자총액 증가로 이어질 뿐 아니라 증시에 부담을 주게 된다.

따지고 보면 제 2금융권 지배문제도 부채비율정책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부채비율 2백%는 당초 기업 경영의 발목을 묶는 무리한 목표라는 지적을
받았다.

업종별 특성도 고려하지 않았다.

외상거래가 빈번해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매입채무가 전체 부채의 30~40%나
되는 우리 기업의 특이성도 감안하지 않았다.

부채비율은 재무 안정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이다.

이 비율을 낮추는게 경영의 지상 목표가 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대신 금융기관의 건전성감독을 강화하면 기업 재무구조는 절로 개선될
수밖에 없다.

< 이익원 산업1부 기자 ikl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