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Homo ludens;노는 사람).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J.호이징거는 인간 속성을 이렇게 요약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생각하는 사람)와는 달리 놀이를 즐기는
측면을 본 것이다.

과거엔 오락이라 하면 "놀고 먹는 것"으로 여겨졌다.

근엄한 사람들은 그 자체를 죄악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엔 오락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엔터테인먼트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산업이 된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올해 "인간개발보고서"는 오락산업이 항공우주산업을
제치고 미국 최대의 수출산업으로 부상했다고 밝혔다.

미국 LA시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근로자들이 항공산업에서 일자리를 잃어갈
때 엔터테인먼트산업은 그 두배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는 이제 "산업"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막대한 부를 만들어
내는 21세기 최고 유망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 오락산업, 왜 중요한가 =오락산업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산업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화 비디오 애니메이션 방송프로그램 등 영상 분야.

이와 함께 음반 게임산업 등도 규모가 만만찮다.

어떤 전문가는 테마파크 카지노 등도 포함시킨다.

급변하는 정보.통신혁명의 물결 속에 오락산업의 범위는 엄청난 속도로
넓어지지고 있다.

오락산업은 침투성과 파급성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무공해
산업이다.

엔터테인먼트는 기존 제품과 산업으로 파고든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교육 정보 경제 정치 등과 결합한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는 각각
에듀테인먼트 인포테인먼트 이코테인먼트 폴리테인먼트 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오락산업은 또한 관련 산업분야로 그 영향력이 계속 퍼져 나가는 "윈도
(window) 효과"의 대표적 표본이다.

즉 영화 한편이 흥행에 성공하면 나중에 비디오 음반 게임 캐릭터 테마파크
등 연관산업으로 계속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세계 오락산업의 6대 기업인 소니 타임워너 시그램 바이아컴 디즈니
뉴스코퍼레이션 등은 산업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 음반 방송 출판
게임 애니메이션 인터넷 등 사업을 확대해가고 있다.

<> 한국 오락산업, 어디까지 왔나 =문화관광부가 추정한 세계 오락산업의
규모는 지난 98년 기준으로 4천8백억달러 수준.

오락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이 15~30%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3~4년 후의 시장
규모는 지금의 두배 이상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한국 오락산업은 아직 세계시장에 명함을 내밀 처지가 못된다.

우선 시장규모면에서 세계시장의 0.8% 정도인 37억달러 정도에 그친다.

그나마 존재하는 시장도 영화는 75%, 음반은 65%, 비디오와 게임시장은
80% 이상을 외국상품이 차지하고 있다.

외국산이 판을 치는 현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획.연출력의 부족을
첫째로 꼽는다.

김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디자인과 교수는 "한국이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만화영화 생산국이라고 하지만 스스로 기획해 만든 작품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4년제 대학과 2년제 대학을 통틀어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학교는
32곳에 달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질적 수준은 나아지지 않은 채 양적인 팽창만 하고 있을
뿐"이라며 "기획력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엔 미흡하다"고 말했다.

윈도효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점이다.

임상오 상지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영상 음반 게임 등 서로 다른 오락
산업간 네트워크는 물론 게임산업이나 영상산업처럼 같은 산업내의 연결고리
도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아 효율적인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나아갈 방향 =김형수 교수는 "기술교육은 물론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
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물론 "콘텐츠웨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김 교수는 "오락산업은 문화산업과 다름없다"며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면 세계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구문모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창조적 인력을 키우고 오락산업내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동현 게임종합지원센터 소장은 "업체끼리 서로 돕는 상생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오락산업은 제로섬게임이 아닌 윈윈게임이기
때문이다.

미래학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상상력이 부를 만드는 오락산업이
21세기 국가 경쟁력에서 제조업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 밀레니엄의 경쟁력은 누가 사람들의 여가시간을 채워줄 우수한 콘텐츠를
제공하느냐, 즉 엔터테인먼트산업에 달려 있다는 것.

이젠 한국도 가장 한국적인 문화상품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해야 할 때다.

< 이방실 기자 smil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