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것 같다.

수북한 낙엽을 생각하며 그 가을을 생각한다.

그해 가을은 무척이나 맑았다.

나는 학생들과 밀양 근처의 어느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가다가 밥을 해 먹고, 노래를 부르고.

그런데 처음 느낌과 달리 그 산은 꽤 높았다.

허덕거리며 돌들이 깔린 그 길을 올라갔다.

저기가 정상이구나 싶은 바위가 보여 있는 힘을 다해 그곳에 닿으면 거기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 바위를 한참 돌아간 곳에 그 산의 끝 바위가 있었다.

학생들이 뒤에서 밀기도 했다.

실은 그쯤에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 꼭대기의 바위는 나에게 마치 "뭘 그리
꾸물대는가"라고 꾸짖는 듯 눈을 흘기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발바닥이 아팠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윽고 닿은 바위의 보드라운 살...

그런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바위에 앉으려고 했을 때, 오른쪽 허벅다리가 너무 아파 도저히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바위 끝에 비스듬히 기대어 거기 정상의 바람을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내려 올 때는 그 부분의 아픔이 너무 심해 왼쪽 다리만으로 걷다시피
절뚝절뚝하며 내려 왔다.

그렇게 내려오면서 생각하니 왜 두 다리로 걸었는데 오른 쪽 다리만 아픈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이유를 어리석은 나는 한참 후에 깨달았다.

그건 내 왼쪽 다리의 마비 때문, 거의 삼십년 전 뇌 수술 탓이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나는 왼쪽 다리가 아직도 좀 불편한데, 이제 거의 회복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 완전해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내 왼쪽 다리의 신경은 죽어 있었으므로 그렇게 심하게 걸었는데도
아픈 줄을 모른 것이었다.

나는 나의 오른쪽 다리에 감사했다.

허벅지가 쿡쿡 쑤실 때마다 나는 "감사"의 웃음을 던졌다.

살아있는 것만이 아픈 것이다.

그것은 삶의 향기였다.

가을 앞에서 모든 나무들은 실은 고통의 물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아플까.

고통의 물을 들이고 있는 저 나무들은.

딱딱한 흙 속에서도 살아 남아야 하는 나무들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