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금융기관 사람들은 한국기업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돈을 제대로
갚지 않을 때 BJR("배째라"를 영문이니셜로 표현한 것)이냐며 비난해왔다.

국제적인 상거래관행에 비춰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대우의 해외채권단이 요즘 보이고
있는 행태는 한술 더뜬 BJR가 아닐까.

수억달러를 물린 한 외국채권금융기관의 협상대표는 대우에 돈을 빌려줄
당시의 책임자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워크아웃관행에 따라 빚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상식인
데도 이 협상대표는 억지나 다름없는 "정부보증" "국내채권단보증"을 요구
하고 있다.

"한국주식회사"를 보고 돈을 빌려준 것이므로 한국정부나 국유화한 은행이
책임지고 갚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누가봐도 해괴망측한 것이다.

그들은 정부나 은행에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정부나 은행책임자가 서명한 계약서를 갖고 있지도 않다.

현대 삼성 등 다른 그룹계열사에 돈을 빌려주고도 한국주식회사에 빌려준
것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

외국금융기관이 한국주식회사에 돈을 빌려준 것이라면 기업에 따라 다른
금리를 적용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외국금융기관은 그동안 대우에 돈을 빌려주고 많은 이자를 챙겼다.

다른 그룹에 빌려줄 때보다 더 많은 이자를 챙겼다.

그런 높은 수익을 챙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리스크(위험)는 내몫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외국금융기관의 모순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국의 "재벌"을 비판하면서 실제 그들이 돈을 빌려준 곳은 재벌뿐이다.

대우가 해외사업을 확장하도록 돈을 빌려준 것도 외국금융기관이고 유동성
위기에 불을 붙인 것도 그들이다.

한국의 금융관행이 후진적이라며 욕하던 그들이 이제 와선 스스로 전근대적
인 억지요구를 늘어놓고 있다.

여신심사를 잘못해 돈을 빌려준 책임은 국내채권자에게만 있지 않다.

손실부담을 져도 채권액이 훨씬 많은 국내채권자가 더 진다.

이성을 잃은 여신담당자를 협상대표로 내세우는 잘못도 되새겨볼 일이다.

정부는 이미 국내외채권자를 동등하게 대우하겠다고 누누이 밝히고 있다.

해외채권단은 더이상 본심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동등대우이상의 특혜를 원하는 것인지 솔직히 밝혀야 한다.

< 허귀식 경제부 기자 windo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