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문제의 초점은 내년에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금리가 더 상승할
것이며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데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8~9%, 9월까지 월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8% 이하다.

올 경제성장률이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와 비교한 수치이므로 내년의 경우
경제성장률이 더 낮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높아질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그 가능성은 총수요 측면에서 공공지출의 증대와 소비심리의 회복으로
총공급측면에서는 유가 임금 공공요금의 상승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정책은 단기뿐만 아니라 장기 경제안정화를 위해 취해지므로 현시점에서
내년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단기에 예견되는 문제의 성질에 따라 장기보다 단기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어찌 됐건 현재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11월 대우채 환매가 시작되면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소위 "11월 대란설"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다.

11월 대란은 대우채 환매요구로 인해 발생되는 유동성 부족을 메우기 위해
금융기관이 채권을 방매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각 금융기관의 유동성 확보 경쟁으로 발생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스템 위험(systemic risk)"이다.

이것은 경제의 모든 참여자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연관돼야 하는 시장의
제도적 구조적 장치에서 발생하는 금융위험, 즉 금융시스템의 작동을 완전히
붕괴시킬 수 있는 교란요인이 생길 수 있는 위험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위험은 금융시장이 발달하고 금융기관간 상호연관성이 밀접해지면서
등장한 개념으로, 단기에 발생 가능한 시스템 위험은 어떤 경제안정화 목표
보다 더 중요한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

시스템 위험이 얼마나 위험하고 정책당국의 대책이 필요한가를 보기 위해
지난해 9월에서 10월초까지 미국 롱텀캐피탈의 사례를 활용하여 설명해 보자.

러시아의 일방적인 채무지불 정지로 인해 증거금을 활용해 러시아 국채(GKO)
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던 롱텀캐피탈은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자본금의 52%를 증거금에 투자하고 그 중 16%만 신흥시장의 투자에 배정돼
있었다.

다른 투자은행들도 유사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란 우려가 시장에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이로 인해 악성 소문이 무성해지면서 시장의 교란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라틴아메리카의 신흥시장인 브라질까지 전염되어 나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더 증폭됐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9월 29일
연방기금금리를 내린 데 이어 10월 15일 두 번째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이로써 시장의 불안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것도 부족해 11월 17일에는 연방기금금리뿐만 아니라 재할인율도 인하했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세 번에 걸쳐 취한 금리인하는 롱텀캐피탈 문제가
"시스템위험"으로 현재화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의 존재이유는 안정된 금융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정책당국은 경제안정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면서 99년에는 미국 경기가 호전되고 오히려 인플레이션
압력이 우려돼 지금은 금리인상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의 사정은 어떤가.

대우채권 환매 문제가 심각한 유동성 문제를 일으켜 시스템위험이 우려된다
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재정경제부는 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는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언론보도로 정책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9월말 IMF.IBRD 연례총회에 참석한 한은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면서 금리인상을 시사했다.

대우채 환매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11월 대란"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해야 풀 수 있는 문제이지 인플레이션 운운하면서 금리를 인상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였다.

그 결과 주식은 폭락하고 정부 부처의 장관이 금리인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한국은행도 금리인하가 올바른 정책방향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은 한국에서는 한국은행만큼 경제학 분야의 고급인력을
많이 보유한 곳도 없는데 한은 총재가 왜 그런 의견을 발표하고 뒤늦게야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의 차이는 미국의 FRB의장은 롱텀캐피탈사 문제가 시스템 위험
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인식한 반면, 한국은행 총재는 11월 대란이 바로
시스템 위험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데서 발생하는 것 같다.

지금 이 위험을 방지하는 길은 한국은행이 단기적으로 충분한 자금을
공급하는 길밖에 없다.

< cgrh@swift2.sw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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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박사
<>서울여대 사회과학연구소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