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용 < LG환경안전연 원장 >

인천 호프집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에 55명의 젊은 생명이 사라졌다.

이 사고도 역시 끝없이 계속되는 안전불감증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다시 우리의 치부가 노출돼 국가적인 망신을 당하게 됐다.

불과 4개월 전에 씨랜드수련원에서의 화재로 인해 어린이 23명이 숨지지
않았는가.

이같은 참사사건은 "빨리 빨리"를 외치며 인명이나 안전을 뒷전으로 몰아
내는 한국의 고질병 때문 아닌가.

"공공안전부문에서 세계 최악의 국가중 하나인 한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대형 참사의 하나"라고 씨랜드 화재사고가 생겼을 때 영국의 BBC 방송이
전세계에 보도했다.

이런 식의 보도에 분개하면서도 우리의 안전사고에 관한 수년간의 실상을
보면 사실상 할말은 없다.

지난 95년 대구지하철가스 폭발사고로 3백여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뒤이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5백여명의 사망자와 9백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대한항공은 97년 괌에서 여객기 추락으로 2백여명이 넘게 사망한 사고를
비롯 지난 20여년간 8백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세계적으로 대형사고의 연속 발생국이 돼 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까운 장래에 이러한 오명을 씻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대형사고들 외에는 안전에 관한 국가적인 실상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생활안전분야쪽에서 보면 매년 수만명의 어린이 사상자가 교통사고 등에
의해 발생된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98년에만 2천2백12명이었다.

지난해 산재로 인한 경제적 총손실은 7조원이 넘었다.

엄청난 피해를 겪으면서도 개선되지 않고 잇달아 대형사고가 발생,
국제적으로까지 안전불량국 낙인이 찍히는 원인을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온 사회가 들끓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하다가 또다시 대형사고를 당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수많은 사고를 원천적으로 분석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원인이 인재라고
보고되고 있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법적 규정에 맞추기보다 편법을 사용한 눈가림식
부실공사가 대표적이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규정에 의한 원리원칙보다는 편의를 위한 임의적
운영이 대부분이다.

총체적인 부실을 분석해 보면 안전문화 부재 때문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안전문화 부재의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적당주의와 요행주의임을 알 수 있다.

잘못된 적당주의가 사회에서 추방되지 않는 한 안전문화의 형성은 요원하다.

안전문화 없이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안전사회를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안전문화의 정착이 매우 힘들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가 그동안 집중적으로 노력해 온 산업재해의 경우 83년을 기점으로
재해율이 꾸준히 감소해 98년에는 약 6분의1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이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안전문화의 형성도 가능함을 통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전분야의 경우 정부역할이 중요하다.

정부가 안전문화 정립에 앞장서는 것이 필요하다.

선진국처럼 어릴 때부터 철저한 생활안전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안전문화 정착을 위한 시발점이 된다.

교육부와 안전유관 부서들의 유기적인 협조로 안전교육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돼야 한다.

정부는 수년동안 제도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제도의 변혁은 이루지
못했다.

특히 정부의 안전관련 업무가 여러 부서들로 산재돼 비효과적이므로 미국
처럼 국가전체의 안전을 총괄할 조직이 시급히 구성돼야 한다.

그래서 지나간 대형사고를 분석,재평가해 대책방안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사업자들 스스로 사전예방을 철저히 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은 규제와 감독보다 안전한 사회
건설은 우리의 기본적 의무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계몽해 적당주의를
사회에서 추방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안전이 우리의 생활에 밀착되고 전분야에 확산되도록 해야 하는 1차적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당국자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한다.

< jysung@ lgen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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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화학공학과
<>미국 미네소타대 화공학박사
<>포항공대 겸임교수
<>한국가스안전기술 심의위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