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해 본 사람은 외국에서도 휴대 라디오로 한국 뉴스를 들을 수
없을까 아쉬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사업가들 중에는 현지 소식을 선명한 음질의 휴대
라디오로 세계 어디서든 아무 때나 들을 수 없을까 소망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신문 방송 사업자들은 누구나 한번쯤 저렴하고도 기동력 있게 광범위한
지역에 뉴스를 내보낼 수 없을까 궁리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량의 장비와 엄청난 제작비, 수많은 인력, 국제 제휴망 등 막대한 노력이
필요한 TV 사업을 감당할 수 없는 신문사 중에는 실제로 단순 장비와 기존
인력만으로 세계 전역에 라디오방송을 하고 싶어하는 곳도 없지 않다.

바로 이 같은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세계 초유의 디지털위성
라디오 사업체가 있다.

미국 워싱턴DC에 본사를 둔 월드스페이스(World Space International
Network)다.

이는 세계 위성전파법의 대가인 노아 사마라 박사가 지난 90년 설립한
회사로서 지난달 19일부터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유럽 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개시했다.

한반도의 3만배가 넘는 광활한 지역에 우선 음악 뉴스 교육 교양 등 25개
채널을 운영중이다.

내년 2월부터는 중동으로부터 인도네시아 일본을 포괄하는 아시아 전역에,
그리고 내년 하반기중엔 미국으로부터 칠레 남단에 이르는 미대륙에 라디오
전파를 띄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말 세계 1백23개국 46억명이 가청취자로 편입된다.

월드스페이스의 상업적 성공여부는 서비스가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에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방송사업의 최대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주파수를 이미 장악했다.

또 탁월한 기술력과 자금, 그리고 세계 굴지 위성사업체며 전자업체, 단말기
제조업체들과의 협조체제도 단단히 굳혀 놓았다.

사실 순수 민간자본의 위성 플랫폼 사업자로서 9년간의 준비 끝에 뜻을
이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성공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경쟁자도 없어 이 분야에 관한 한 월드스페이스는 한동안 독보적 지위를
누릴 것이다.

단말기는 히타치 JVC 마쓰시타 산요 등이 만든다.

안경지갑 크기로서 이동중인 차량에서도 CD 음질의 고품질을 자랑한다.

다만 아직 30만원 안팎의 고가 단말기 값을 부담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도록
하는 범용화 과제만 남겨 두고 있다.

하지만 창업주인 사마라 회장 입장에선 월드스페이스는 이미 성공작이다.

돈벌이는 애초에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마라 회장은 숭고한 사명감에서 이를 시작했다.

아프리카 태생인 사마라 회장은 후진국이 선진화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보력의 후진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정보 후진성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책은 범용화까지 너무나 많은
사회적 투자가 필요한 TV나 인터넷 컴퓨터망이 아니라 라디오라고 봤다.

그가 아프리카 지역 대상 방송을 제일 먼저 출범시킨 것도 이런 사명감의
발로에서였다.

월드스페이스는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으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지식산업의 사표이기도 하다.

총자산 11억달러 가운데 자본금 3억달러는 사우디아라비아 거부들이 냈고
나머지 8억달러는 크레딧스위스퍼스트보스턴 은행이 주간사가 돼 지원했다.

정보적 약자를 돕는다는 취지가 너무나 좋아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이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뜻이 먼저 있어 돈이 저절로 따르는 월드스페이스의 행보가 주목된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