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손과 발을 대체할 기술은 끊임없이 발달하고 있다.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지금 인류는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는 기술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반도체가 그것이다.

"반도체는 흔히 인간의 두뇌에 비유된다. 영상표시장치를 얼굴, 배터리를
심장, 센서를 오감으로 비유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산업연구원 주대영
연구위원)

인류를 정보혁명으로 이끈 PC에서부터 한국에서만도 2천만명 이상의 사용자
를 확보한 휴대폰, 일본 열도를 들끓게 했던 다마코치 게임기, 어린이와
대화하면서 노래하는 디지털 토이...

반도체가 존재함으로써 가능했던 기술은 한둘이 아니다.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도 종류가 있다.

크게 두종류로 나뉜다.

두뇌의 기억 능력을 본딴 메모리 반도체와 사고 능력을 갖춘 비메모리
반도체가 그것이다.

메모리 시장에서 한국은 강대국이다.

1,2위를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비메모리 시장에서 한국은 약소국일 따름이다.

문제는 "비메모리의 강자가 반도체 산업의 승자가 될 것"(삼성경제연구소
장성원 수석연구원)이라는데 있다.

비메모리는 우선 시장규모면에서 메모리를 압도한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시장은 1백45억1천6백10만
달러(전망치)로 이 가운데 비메모리가 79%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반도체업계는 메모리 생산비중이 87%(96년 기준)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비메모리 반도체 최강자인 인텔의 5분의 1을 약간
웃돌고 있다(미국 데이터퀘스트).

더욱이 시스템온칩(SOC)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력품목으로 떠오르면서
단품 메모리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예측된다.

SOC는 메모리와 각종 부품을 한개의 칩에 담은 것.

성능을 높이고 부품수를 줄이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SOC 시장 확대에 힘입어 비메모리 시장은 오는 2002년 1천7백47억7백만달러
로 급성장할 전망이다(WSTS).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는 경기변동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다.

비행기 싣고 떠날 때와 도착할 때 가격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경기변동에
취약한 메모리와는 다르다.

미국의 TI사가 메모리 사업부문을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넘기고 비메모리에
주력키로 하는 등 미국과 일본업체가 비메모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메모리 반도체의 한계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도체 업계가 비메모리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 메모리에서 축적한 미세가공 등 세계적인 생산기술을 갖고 있다.

기초기술과 설계기술만 보강한다면 비메모리에서도 승부를 걸만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비메모리 기초기술과 설계기술은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조립기술은 일본과 대등하고 제조기술은 일본을 1백으로
할때 90 수준이다.

비메모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도체를 사용하는 시스템 업체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다.

미국과 일본이 비메모리에 강한 이유도 다양한 시스템에 대한 원천기술을
갖고 있어서다.

이는 한국이 강한 시스템 분야의 비메모리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업계도 비메모리 반도체는 특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작년말 전력용 반도체사업을 페어차일드세미컨덕터에 넘긴 것도
선택과 집중전략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전력용 반도체는 연간 1백96억원의 이익을 내던 흑자사업이었다.

삼성은 LCD모니터 디지털TV 등 경쟁력 있는 시스템과 연계한 비메모리
사업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설계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과제다.

장비 의존도가 큰 메모리와는 달리 비메모리에서는 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중소 및 벤처기업을 키우는 것도 과제다.

대기업이 주도한 메모리와는 달리 비메모리 산업은 중소벤처기업이 주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90년대 중반이후 한국에서 주문형반도체(ASIC) 업체들이 생겨나면서
이디텍 서두로직 아라리온 등 60여개의 벤처기업들이 활동중이다.

LG반도체 출신의 연구인력이 지난 98년 7월 설립한 이디텍은 최근 LCD
모니터의 영상정보를 처리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인 ''이미지 프로세서''를
국산화했다.

매나다 제네시스가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이 시장에 갓 창업한 벤처기업이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이미지프로세서 세계시장은 올해 4백50만개(1억8천만달러)에서 내년
8백50만개, 2003년 3천만개로 급성장세를 탈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성원 수석연구원은 "공공벤처펀드로 반도체투자조합을
결성하는 것도 반도체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공동으로 벌이는 반도체 지원사업과는 별도로
정보통신부가 독자적으로 지원사업을 벌여 중복되는 감이 있다. 투자효율을
높이는 차원에서 통합조정이 시급하다"(주대영 연구위원)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인텔은 메모리반도체의 개척자이면서도 과감하게 비메모리로 전환해 세계적
인 초유량기업으로 고속성장하고 있다.

요즘과 같이 메모리반도체가 흑자를 내는 시기가 바로 비메모리에 투자해야
할 적기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비메모리의 씨앗을 뿌리는 것만이 미래의 과실을 보장
한다고 반도체 컨설팅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 오광진 기자 kjo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