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원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1968년 창업한 인텔의 주력사업은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이었다.

D램을 축으로 EPROM과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을 세계 최초로 내놓으면서
고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80년대들어 주변상황이 인텔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본업계가 D램을 저가에 대량으로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업계는 지난 86년 세계 시장의 85% 가까이를 점유하며 인텔의 시장을
파고 들어왔다.

85~86년에는 반도체 불황까지 겹쳤다.

페어차일드 RCA 시그넥스 등 미국업체들이 속속 D램 사업에서 철수했다.

인텔도 2년 연속 매출이 줄어들고 86년엔 2억달러의 적자를 나타내는 등
고비를 맞았다.

7천2백명의 근로자를 감원시키고 2개의 공장을 폐쇄하는 등 인텔의 D램
사업이 기로에 서게 된 것.

이런 상황에서 86년 인텔의 무어 회장과 앤디 그로브 사장은 결단을 내렸다.

"인텔은 많은 D램 업체중 하나일뿐이며 그 산업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D램의 기술선도기업이며 모든 제품군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동안의
신념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이 있긴 했다.

그러나 최고경영진은 D램 사업에서 물러나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 회사는 처음에 메모리 반도체 공급업체로서 번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컴퓨팅의 얼굴과 인텔도 변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컴퓨터
산업에서 가장 넓고 가장 빨리 성장하는 시장이 됐고 인텔은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선도적인 공급업체가 됐다"(87년 인텔 연례보고서)

인텔은 사업전환후 D램에 집중했던 자원을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했다.

사업철수로 미래가 불확실해진 최신 메모리 생산공장을 활용해 "386"
마이크로프로세서 고품질 제품 생산에 나섰다.

적자로 전락한 86년에도 연구개발비 만큼은 매출액의 18%인 2억달러로
늘렸다.

결과는 대성공.

85~86년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업전환 1년 뒤인 87년 매출액이 51% 증가한
것.

2억5천만달러의 흑자도 기록했다.

매출대비 순이익률이 13%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인텔은 386 486 펜티엄 등 차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3~4년
주기로 시판했다.

마침내 인텔 인사이드 선풍을 일으키며 세계시장에 깔린 PC의 85%에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CPU로 장착되기에 이른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서열도 85년 8위에서 92년 이후 일본의 NEC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인텔은 D램에서는 일본업체에 패했지만 고부가가치 고성장 분야인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해 세계 표준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져가고
있다.

인텔의 변신은 비메모리 반도체의 성장 가능성과 함께 최고경영진의 결단및
기업역량의 집중이 위기를 성공의 발판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만하다.

< serijsw@seri-samsung.or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