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대녕(37)씨가 네번째 장편소설 "코카콜라 애인"(세계사)을 냈다.

우선 줄거리부터 보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방송국 구성작가 일을 그만둔 "나"는 2년전부터 알고
지내던 김현필 PD의 연락을 받는다.

갑작스런 만남에 의아해하며 나간 자리에서 김PD는 술에 취한 채 한 여인과
의 밀월여행, 뺑소니 사건 등을 횡설수설 털어놓은뒤 오피스텔 열쇠를
떠안기고 달려오는 택시로 뛰어든다.

이때부터 의문의 사건에 말려든 "나"는 그의 오피스텔 컴퓨터를 통해
"코카콜라 클럽"을 발견한다.

이 클럽은 마약과 매춘에 손대고 있었다.

김PD가 사건의 핵심을 흐리기 위해 자신을 끌어들였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결국 "나"는 혐의를 벗기 위해 밀월여행의 동반자로 여겨지는 오미향을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 PC통신으로 만난 여자 장진화가 개입한다.

그녀는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나무라고 "이 사건을 계기로 잃어버린
자신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나버린다.

소설은 오미향과 함께 비밀의 출구를 찾아 떠나는 행위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낯선 세계, 혹은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

그동안 윤대녕 소설의 화자는 여행중이거나 어디론가 막 떠나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먼 여로를 거쳐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가 출발한 곳은 도달한 곳과 일치한다.

그의 길은 더 이상 종착지를 향한 미로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를 이토록 길 위에서 헤매게 했을까.

그는 이번 소설에서 "단절과 어긋남"의 운명을 역설적으로 그려보인다.

어긋남의 행로는 소설의 첫줄부터 드러난다.

"4월에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열린 ''우리나라 들꽃전시회''에 가지 못했다.
아름다웠을 텐데"

두번째 문장도 마찬가지다.

"6월초에는 강남에 있는 코엑스에서 ''화훼전시회''가 열린다. (...) 그 때는
꼭 가봐야지. 그게 누구든 여자와 함께 가면 좋을 텐데. 그러나 내겐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

마지막은 어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광화문 카페에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는
서대문쪽으로 걸어가는 장진화를 발견하고 뒤쫓아가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다.

윤대녕 소설의 "단절과 어긋남"은 결별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연속"과 "합일"의 경지를 향한 몸짓이다.

작품해설을 쓴 박철화(소설가.문학평론가)씨도 "불연속 혹은 해리의 고통
속에 빠진 한 인물이 연속성을 회복해 존재의 충만한 일치를 이루려는 여정"
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시적인 문체다.

그의 글은 스토리보다 이미지에 더 가깝다.

은유와 상징이 소설의 밀도감을 높여준다.

그래서 그의 글은 한줄한줄 곱씹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

이는 가벼운 글쓰기가 난무하는 세상에 그의 진지함이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이야기의 연속성보다 비약적인 암시와 이미지를 통한 형상화,
섬광과도 같은 순간 포착에 능하다"(문학평론가 김화영)는 평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