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나라살림을 심의해야 할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언론대책 문건" 국정조사와 관련, 자신들의 입장이
수용되지 않으면 국회일정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가 하면,
여당은 야당이 부산집회에서 거론한 "빨치산" 발언을 사과하지 않으면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과연 이래도 되는지 여야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국정심의는 내팽개친채 당리당략에 따라 정쟁을
일삼는 행위는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대로 가다간 국회 무용론이 제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국회파행의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는 언론대책문건 파문의 진실규명은
계속돼야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국정조사등의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차분하게
풀어나가야 할 일이지 국회를 공전시키고 장외투쟁과 같은 극한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이번 국회는 15대의 마지막 정기국회인데다 내년도 나라살림을
다루는 예산국회가 아닌가.

수많은 민생현안들이 걸려있고, 21세기의 나라 장래를 좌우할 주요 과제들이
심의돼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부여돼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시한(12월2일)이 20여일 밖에 남지않았다.

당장 국회를 정상화시키더라도 92조원이 넘는 예산안을 철저히 심의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예결위 구성마저 제대로 이뤄지지않고 있다니 답답하다.

만에 하나 예산안이 법정기일을 넘겨 다소 늦게 통과된다고 무슨 상관이냐는
안이한 자세를 갖고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결코 입법부가 법을 어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최대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정치개혁은 어떤 상황인가.

내년 총선이 5개월여밖에 남지않았는데도 선거법을 비롯해 어느 것 하나
매듭지어지는게 없다.

여야간 본격적인 협상조차 이뤄지지않고 있다니 안타까운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 현재 계류중인 법안 4백60여건을 포함, 이번 국회에서 심의돼야 할
법안만도 5백여건이 넘는다.

특히 이들 법안의 대다수가 민생과 관련된 것들이어서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주요법안들이라고 한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지금은 국회가 민생현안을 외면한채 정쟁에 몰두할
시기는 아님은 분명하다.

여야는 이제라도 냉정과 이성을 되찾아 언론대책 문건으로 불거진 일련의
사태들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면서 국회 본연의 임무에 하루 빨리 복귀
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