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국가재정에 대한 근심이 깊어진 한 주였다.

한보 6조원, 기아자동차 10조원 부실에 이어 대우의 30조여원 부실이
발생해 상당부분 정부 몫으로 전가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투자자가 책임져야할 부분도 대형 부실에 따르는 시스템 리스크
탓에 많은 부분이 국민의 공동부담으로 돌려졌다.

이에 따라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물론이고 국책연구소들까지도 재정위기를
경고하고 나섰다.

정부여당도 재정 건전화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로 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재정 위기에 관한 한 아무리 기업의 부실이 큰 규모라고 하더라고 국민연금
의 부실에 비하자면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대충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7% 안팎인 대우의 부실을 비롯해 모든 기업
부실은 한차례로 끝난다.

그러나 국민연금 부실은 평생에 걸쳐 이어진다.

매년 한차례씩 대우사태가 발생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노령인구 증가 등에 따라 부실규모도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자꾸 더
커지게 된다.

산업선진국 중에서 노령인구 비중이 가장 적고 연금기금이 가장 튼실하며
미래 기금수입을 결정하는 경제활력도 가장 왕성해 국민연금에 대한 걱정이
가장 덜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또 지난해부터 앞으로 15년 내지 25년간 연방정부 재정이 흑자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설사 국민연금이 부실화된다해도 어느 정도
충격을 줄일 수 있는 처지다.

이런 미국도 연금채무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훗날 내 주어야 할 연금지급액을 현재가로 할인해 정부재정에
반영할 경우 미국 정부는 지금 GDP의 3배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후세대들이 착실히 연금갹출금을 낸다고 가정해 이들로부터의 갹출금을
제하고 순부채만 따진다 해도 정부재정은 GDP의 50% 가까이 적자다.

이런 사정은 갈수록 악화돼 30년 후에는 순부채가 GDP의 100%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은 더 심각하다.

현재 국민연금 순부채액이 GDP의 200%나 되고 30년 후에는 300%가 될
전망이다.

정부재정도 문제지만 국민 개개인은 더 문제다.

미국 재정학계의 권위자 앨런 아우어바하 버클리대 교수는 미국 국민연금을
지탱하려면 지금부터 영구적으로 GDP의 5%를 더 세금으로 걷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 지체하고 개혁을 미루면 이는 GDP의 7%로 늘어난다고
경고했다.

같은 맥락으로 로렌스 코틀리코프 보스톤대 교수는 현 세대인들의 평생에
걸친 실효세율이 34%인 반면 다음 세대는 평생 82%의 실효세율을 적용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1940년에 은퇴한 사람의 국민연금 투자수익률은
135%였다.

50년에 은퇴한 사람의 경우는 24% 70년 은퇴자 10%, 90년 은퇴자 4%로 계속
줄어들었다.

현재 30세인 국민의 투자수익률은 1.2%에 불과하고 그 아래 세대는 마이너스
를 기록할 전망이다.

현재로서도 30세 독신 흑인 남자는 이미 낸 돈의 88%밖에는 돌려받지
못한다.

평균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이렇게 젊을수록 많이 내고 적게 타는 국민연금 구조를 들어 하바드대
그레고리 맨키브 교수는 "국민연금은 사기"라고 규정했다.

한국의 경우도 심각하다.

작년말 현재가로 따져 국민연금 순부채액이 186조원으로 GDP의 40%가
넘는다.

게다가 유럽선진국의 경우 150년 미국의 경우 70년에 걸쳐 발생한 인구
노령화 정도가 한국에서는 몇 십 년만에 이뤄질 전망이어서 사태 악화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빠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실상 파산상태인 공무원연금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브라질 공무원
연금처럼 국민연금에 비해 11배나 되는 혜택을 주게 돼 있어 신속히 개혁하지
않을 경우 브라질과 같은 재정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이번 "균형재정 조기회복을 위한 특별법"에 국민연금 개혁방안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소위 브라질화(Brazilification)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