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20세기 동서냉전과 이념대립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이 지난 89년 11월 9일
붕괴된 것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몰락을 몰고온 역사적 사건이었다.

총연장 1백55km에 달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동유럽 공산주의의 패망뿐
아니라 서유럽이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10년이 지난 지금,유럽에서는 새로운 정치.경제구조
가 뿌리내리고 있다.

정부는 더욱 다원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고 사회변화의 동인도 이데올로기
와 지정학적 문제에서 테크놀로지와 비즈니스로 옮아가고 있다.

기업가 예술가 지방관리들이 중앙의 정치인들을 대신해 강력한 정책결정세력
으로 부상하고 있다.


<>부상하는 동유럽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동유럽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일각에서는 유럽의 중심이 점차 동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동유럽의 높은 교육수준과 소비를 감안할때 아시아 개도국보다 경제잠재력이
뛰어나다는 평가 때문이다.

폴란드 헝가리등 동유럽 국가들은 민영화와 자유화 정책을 통해 높은 성장세
를 보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2003년 유럽연합(EU) 가입이 예정된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등 6개국의 경제성장률이 향후 10년동안 연 7~8%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상당수 국가들은 체제전환 이전보다 소득이
낮아지는 등 시장경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겪고 있다.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이 국가들은 낮은 임금과 높은 실업률, 저조한 생산성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식적인 실업률만도 두자리수에 이른다.

도로 학교 병원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도 풀어야 할 과제다.

내년부터 시작될 EU가입 협상에서 농업보조금 노동력이동 등 쟁점 때문에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의문이다.

동서간 소득격차 해소도 현안중 하나다.

동유럽국가중 가장 활기찬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폴란드나 헝가리 조차
국내총생산(GDP)이 EU평균에 도달하는데 25~30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40여년동안 지속된 체제와 이념의 차이가 낳은 상이한 사고와 생활방식으로
비롯된 동서간 심리적 갈등을 해소되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하는 서유럽 =동유럽의 개방에 따른 새로운 경제체제는 수백만 유럽인
들에게 실직이라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동유럽의 값싼 노동력이 독일 프랑스등 서유럽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유럽 국가의 임금하락과 실업자 증가로 이어지면서 동서간 갈등과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EU기업들이 비용이 낮은 동유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도 서유럽
에서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부작용에도 불구 베를린장벽 붕괴는 서유럽의 통합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철의 장막이 걷히기 전인 80년대 중반부터 유럽의 시장통합이 본격화됐지만
독일 통일을 계기로 유럽통합의 물결이 유럽대륙 전역으로 확산됐다.

광범위한 규제완화와 민영화도 급속히 진척되고 있다.

지난 82년 은행 국유화에 열을 올렸던 프랑스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뒤
태도를 바꿔 은행 보험등 국유기업을 민간에 매각했다.

경제의 국유화 비율이 60%에 달했던 이탈리아도 대부분의 국유기업을
민영화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유럽대륙을 휩쓸고 있는 자유화 바람이 동유럽은
물론 서유럽의 경제 사회 전반을 뿌리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 박영태 기자 pyt@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