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 < 대구대 교수 / 경영학 >

"문화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정의는 무려 1백60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 가장 짧은 것은 "문화란 일정 문화권내에서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한때 이런 우스개가 있었다.

고속도로에 교통사고가 났다.

미국의 교통경찰은 사건을 통보받고는 사건현장에 달려가서 <>통행을
차단하고 <>현장을 보존하며 <>환자를 즉각 긴급조치하고 <>병원으로 호송한
뒤 상부에 경위를 보고한다.

한국의 교통경찰은 현장에 가서는 상황을 먼저 상부에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린다.

러시아에서는 어떤가.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상부에 보고도 않고 오히려 상부에서 그 사실을 먼저
알고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다.

이같이 문화는 본질적으로 쉽사리 바뀌지 않지만 그 문화를 바꾸는 요소로서
정책과 기술을 손꼽을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스타벅스 커피체인점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종업원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고객이 주문한 커피가 품절됐다고 하면 "곧 원료가 도착합니다.
기다리시는 분에게는 주문한 커피를 무료로 드리겠습니다"라고 소위 "고객
만족경영"을 종업원이 스스로 판단, 실행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품절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거나 좀더
친절하게 "그 물건은 다 떨어지고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른 것을
드시지요"라고 말할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국은 저신뢰 사회이므로
본질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거대기업이 발달할 수 없는 사회문화였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재벌을 육성했다고 주장했다.

스타벅스와 한국의 재벌은 정책 또는 제도가 기업문화와 사회문화를 극복한
사례이다.

전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서구의 일부 경영학자들은 전화 때문에 중간관리자
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중간관리자란 원래 위의 정보를 아래로 내려 주고 아래의 정보를 위로 올려
보내는 중개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필요한 정보를 확산시키지 않고 독점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전화가 설치되면서 실무직원이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정보를 전달하고
최고경영자 또한 중간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실무자에게 전화로 직접 지시하게
될 것이므로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축소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중간관리자의 눈치를 보는 기업문화상 부하가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전화할
수도 없었다.

예외를 제외하면 실무자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최고경영자 역시 불쾌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최고경영자가 실무자에게 직접 무슨 지시를 하게 되면 중간관리자가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전화라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기업의 업무방식을 크게 바꾸지 못했다.

전화기술은 "문화의 벽"을 깨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종업원이 중간관리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최고경영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최고경영자 역시 중간관리자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전체 사원에게 지시할 수 있도록 한다.

전화는 상대방이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

자동응답기가 있다고 해도 당사자가 없으면, 또는 있어도 전화받기가 싫으면
대화가 안된다.

그러나 인터넷은 당사자가 있든 없든 정보를 띄우기 때문에 컴퓨터 앞에
사람이 앉아 있든 없든 구애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터넷정보에 빨리 접속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것은 자기 자신뿐
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 속성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SPAM 메일"이다.

따라서 인터넷의 등장은 전화의 등장 때와는 달리 기업의 업무방식을 근본적
으로 바꾸고 중간계층을 아예 없애고 있다.

데스크 PC는 중간관리자의 정보중개역할을 대신하고, 포터블 PC는 비서를
몰아낸다.

전화시대가 지시 명령 감독의 시대였다고 하면 인터넷시대는 대화와
상호이해의 시대이자 중심이 없는 시대이다.

경영자와 근로자는 시대를 읽어야 한다.

인터넷 기술은 문화의 두터운 벽을 없애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이기는 조직이 되려면 사고 현장이나 서비스 현장의 종업원은
자신의 판단하에 고객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주는 대안을 세우고 상사.동료.
고객과 동시에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종업원 또한 자신의 책임아래 업무를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전화세대의 종업원 몸값은 회사와 상사가 결정하지만 인터넷세대는 자기의
몸값을 자기가 관리한다.

< jklee@biho.taeg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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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경영학과
<>경북대 경영학박사
<>미국 보스턴대 교환교수
<>저서:경영정책론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