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안정적 정치토대와 지식을 숭상하는 사회풍토, 인간에 대한
믿음속에서 유례없는 지식의 혁명을 이뤄냈다.

철학에서부터 윤리학 물리학 수학 등 다양한 학문이 도시국가에서 꽃을
피웠다.

그런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4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지식"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하면서부터다.

무리수는 실수이면서도 정수나 분수로 딱 떨어지지 않는 수.

원주율(파이)이나 "2의 제곱근" 등이 그것이다.

무리수는 그리스인들에게는 딜레마 그 자체였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며 세상은 유리수로 표현할 수 있는, "충분히" 인식
가능한 대상이라고 믿었던 그들에게 "끝도 한도 없는" 무리수는 연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결국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리스 사상의 기저를 흔들 수 있는 이
엄청난 발견앞에서 더 이상의 연구를 포기해야만 했다.

2000년대의 현대인들은 또 하나의 딜레마앞에 서게 됐다.

생명공학 기술을 둘러싼 "인간복제 논쟁"이다.

지난 8일 일본에서는 "반인반우" 세포를 만들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성인남자의 살점을 소의 난자에 이식시켜 "반은 사람이고 반은 소"인 새
생명체의 세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구약 창세기전에서나 나옴직한,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소식은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지난 97년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후 탄력이 붙은 생명공학 기술은 이제
모든 생물체를 복제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인간의 특정 장기를 가진 돼지와 쥐도 나왔다.

오직 인간에 대한 복제만이 윤리적 문제에 걸려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올초 국내에서도 인간복제 실험이 성공했듯 지금 어디에선가 상업적
목적으로 인간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문에 인간 존엄성의 상실을 우려하는 종교 및 사회단체들은 생명공학과
관련된 연구를 모두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원전 그리스인들은 무리수라는 딜레마 앞에서 한발뒤로 물러섰다.

그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한편에선 인간복제 논쟁을 하면서도 반인반수와 같은
새로운 생명체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현대인들은 피타고라스보다 더 용기있는 걸까, 아니면 더 무모한
것일까.

미국의 인류학자 찰스 반 도렌이 자신의 저서 "지식의 역사"에서 던진
질문이 떠오른다.

< 박수진 국제부 기자 parksj@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