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 국민대 예술대학장 >

인류 역사에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고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대량
생산이 본격화된 19세기말 영국에서 부터다.

기계화 자동화 분업화라는 근대적 산업생산방식이 등장함에 따라 디자인은
상품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디자인은 단순히 제품생산의 일부로 머무르지 않고 일상생활 전반에
폭넓게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디자인의 가치를 일찌감치 인정하고 적극 활용한 나라들은 역시 산업화가
먼저 이뤄진 선진국들이다.

그들은 디자인의 경제적인 특징 즉, 비교적 단시간내에 적은 투자로 큰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디자인의 고부가가치성을 간파했다.

때문에 제품생산의 일부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활동으로서의 디자인도 적극적
으로 개발했다.

더 나아가서는 디자인을 국가의 부에 기여하는 중요한 분야로 설정하고
국가정책 차원에서 지원했다.

우선 가장 먼저 근대 산업국가를 이룩한 영국을 보자.

일찍이 1896년 왕립디자인 대학원을 세워 지난 1세기 동안 많은 디자인
인재들을 키웠다.

미국 또한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해 지난 91년엔 디자인센터를 건립
했다.

93년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산업디자인 지향국가"를 선언했다.

일본도 73년과 89년을 "디자인의 해"로 선포하고 디자인의 가치와 중요성을
범국가적으로 고취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 디자인이 그같은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디자인은 정보화와 지식산업이 주도할 21세기의 패러다임을 가장 효과적
으로 표출할 분야라는 데에서 그 가치와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정보화와 디자인"의 관계는 20세기 대량생산시대의 "산업화와 디자인"의
관계처럼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시대적 흐름속에서 디자이너는 시스템 분석가, 연구개발가 등과
함께 지적 서비스를 생산하는 가장 핵심적인 직업으로 부상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디자인계는 이같은 변화를 감지하고 정부와 학계, 그리고
기업과 연계해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신지식 산업으로서의 패러다임을
구상하며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디자인이 국가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국민들이 삶을
더욱 편리하고 아름답게 꾸며 나갈 수 있도록 보편화시켜야 할 것이다.

디자인계가 추구할 이러한 비전 앞에는 그에 못지 않게 풀어나가야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일명 "디자인라운드"라고 불리는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디자인에 대한 지적
재산권 문제와 함께 그린라운드에 따른 환경디자인의 개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같은 중대한 과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디자인의 위치는 지난 1세기의
자취를 생각한다면 매우 괄목할 만하다.

아마 다른 어떤 학문도 불과 1세기만에 이러한 발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21세기에 일어날 디자인의 위상과 역할의 변화는 더욱
눈부실 것이다.

21세기는 정보 문화 인간 환경 등의 키워드로 우리에게 다고오고 있다.

디자인이 이 키워드를 풀어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또 20세기의 산업화를 위한 디자인의 역할에 대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21세기에는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의 환경보존을 위하여 디자인의 역할이
더욱 더 증대될 것이다.

21세기의 디자인은 그린 디자인(Green Design) 또는 보존 디자인
(Sustainability Design)을 통해 인류와 자연의 상호 의존성을 인식하고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존중하는 개념 아래 낭비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효율적이며 안전하게 통합하는 장기적인 안목의 디자인을
개발함으로써 디자인 결과의 지속성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지구환경을 보존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정보와 문화는 권력을 가지며 정보와 문화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

또 인간과 환경은 하나이며 인간과 환경을 다같이 지켜 나가는 국가만이
미래가 있다.

따라서 21세기의 키워드를 풀어줄 열쇠인 디자인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기업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에 디자인은 인류를 인도하는 횃불로서, 세계를 지배하는 무기로서,
미래로 나아가는 지름길로서 다양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펼쳐질 디자인의 내용과 양식은 경우에 따라서 다양할
것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21세기에 디자인은 마치 공기처럼 우리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 kimcs@kmu.kookmi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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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응용미술과 및 동 대학원
<>제5회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대통령상 수상
<>한국디자인학회 부회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