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금융대란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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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대란설의 D데이인 10일.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의 각과 사무실은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직원들마다 시장동향을 체크하고 장.차관에게 상황을 보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세는 오전 10시께 판가름났다.
주가는 소폭의 등락이 교차되는 정도였고 우려됐던 수익증권 환매규모도
평소보다 약간 많은 정도였다.
모니터를 지켜보던 한 사무관이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대란은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마치 금융대란설을 처음 다뤘던 한국경제신문의 보도는 오보였다고 책하는
듯한 투였다.
기자가 대꾸했다.
"대란은 없다가 아니라 대란을 막았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죠"
그렇다.
"대란은 없었다"는 것은 결과론일 뿐이다.
다시말해 대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대란설"은 분명히 있었다.
"11월 금융대란설"이 돌기 시작한 것은 석달전 투신사 환매제한 방침이
발표된 직후부터였다.
문제는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에 익숙한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묻지마"형 투자자들은 대란설에 대해 깜깜한 상황이었다.
기자들의 눈엔 이런 상황이 전형적인 "정보의 비대칭"으로 비춰졌다.
대란설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정보에 어두운 일반 투자자들은 또한번 뒤통수를 맞을 수밖에 없다.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정보에 밝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것이다.
대란설을 공론화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되는 또다른 이유는 정부의
대응자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란설이 보도되자 재경부 등 금융당국은 "정부가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는데 괜히 앞서 불안감만 부추겼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과연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는가.
대란설이 불거진 후 재경부와 금감위, 한은 사이에 벌어졌던 정책혼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투신사와 증권사간의 손실부담비율 문제, 저금리 기조 유지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대란설이 미리 표면화돼 이런 문제들이 정리됐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금융당국은 얼마나 더 허둥댔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런 점을 인정해서인지 앞서의 한 사무관도 기자의 대꾸에 "언론의 역할도
컸다"고 맞장구치며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 임혁 경제부 기자 limhyuc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1일자 ).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의 각과 사무실은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직원들마다 시장동향을 체크하고 장.차관에게 상황을 보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세는 오전 10시께 판가름났다.
주가는 소폭의 등락이 교차되는 정도였고 우려됐던 수익증권 환매규모도
평소보다 약간 많은 정도였다.
모니터를 지켜보던 한 사무관이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대란은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마치 금융대란설을 처음 다뤘던 한국경제신문의 보도는 오보였다고 책하는
듯한 투였다.
기자가 대꾸했다.
"대란은 없다가 아니라 대란을 막았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죠"
그렇다.
"대란은 없었다"는 것은 결과론일 뿐이다.
다시말해 대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대란설"은 분명히 있었다.
"11월 금융대란설"이 돌기 시작한 것은 석달전 투신사 환매제한 방침이
발표된 직후부터였다.
문제는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에 익숙한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묻지마"형 투자자들은 대란설에 대해 깜깜한 상황이었다.
기자들의 눈엔 이런 상황이 전형적인 "정보의 비대칭"으로 비춰졌다.
대란설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정보에 어두운 일반 투자자들은 또한번 뒤통수를 맞을 수밖에 없다.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정보에 밝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것이다.
대란설을 공론화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되는 또다른 이유는 정부의
대응자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란설이 보도되자 재경부 등 금융당국은 "정부가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는데 괜히 앞서 불안감만 부추겼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과연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는가.
대란설이 불거진 후 재경부와 금감위, 한은 사이에 벌어졌던 정책혼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투신사와 증권사간의 손실부담비율 문제, 저금리 기조 유지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대란설이 미리 표면화돼 이런 문제들이 정리됐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금융당국은 얼마나 더 허둥댔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런 점을 인정해서인지 앞서의 한 사무관도 기자의 대꾸에 "언론의 역할도
컸다"고 맞장구치며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 임혁 경제부 기자 limhyuc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