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됨됨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여러가지 속설이 있다.

남자들간에 오가는 말 중에 "함께 노름을 해보라"거나 "함께 술을 마셔보라"
는 말이 있지만 별로 효과적인 방법이 못된다.

노름판이나 술자리에서도 능란하게 자신을 숨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함께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봐야 안다"라는 속설에
무게를 많이 둔다.

불신을 조장하는 이런 속설을 들먹이는 것 자체가 별로 유쾌한 일이 못된다.

그런데 박종원감독은 인간의 못된 모습만 골라서 "송어"라는 스크린에
올렸다.

친구 애인 혈연관계의 6명을 한데 모아 위기상황을 일으킨 뒤에 인간관계를
철저히 난도질한 것.

친구나 애인이란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경종이 전편에 깔려있어 마치
순자의 성악설과 존 로크의 늑대설을 합성해 스크린에 옮겨 놓은 형국이다.

영화는 두쌍의 부부와 한 청춘남녀를 깊숙한 산속에 몰아 넣고 인간이
곤경에 빠지면 얼마나 이기적으로 되는지를 보여 준다.

사건은 도회에 사는 두 남자가 계곡에서 송어양식을 하는 친구를 방문하는
데서 부터 시작된다.

이러 저러한 사정으로 한 산골소년의 폭행치사에 연루되면서 세 남자가
살인.살인방조.강간 등 중죄인으로 몰리게 됐다.

신상이 위태롭게 되자 저마다 발뺌.모함.협박 등 온갖 추태를 보여 화기애애
하던 산속 캠프가 배신의 싸움판으로 바뀌는 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모두
2박3일의 휴가기간중에 일어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살하는 속성을 갖는다는 송어를 상징적으로 내세운
발상이 재미있다.

양어장의 수면에 떠있는 수많은 송어시체들은 인간의 추악함에 대한
"목불인견"을 실증적으로 보여줘 이색적이다.

"생각하는 물고기"가 등장한 셈이다.

이래 저래 요즘 물고기들은 인간세상의 탁류에 시달리는 것 같아 불쌍하다.

쉬리가 스크린에서 유명세를 타더니 우나기(뱀장어)에 이어 이번엔 송어까지
한몫 끼게 됐다.

계곡의 수질 오염을 견디다 못해 인간세계로 내려온 것인가?

앞으로 못된 인간을 지칭할 때는 "짐승보다 못한"이 아니라 "물고기만도
못한"으로 고쳐야 할 판이다.

"송어"는 분명히 평범한 오락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정도로 인간성 탐구에 매달린 인상이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마치 추악한 인간심리의 전시장 같다.

트집 험담 질투 배신 멸시 협박 흠집내기 등...

감독이 인간의 모습을 이토록 뒤틀어 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인간 내면의 해부로 보기엔 사건설정의 기간이나 두시간 미만의 필름 길이가
너무 짧다.

일상속에 숨겨진 일그러진 인간상의 실체가 궁금하지만 열길 샘물보다 더
알길 없다는 인간의 속마음을 얼마나 캐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불행히도 이 영화는 짧은기간에 일어난 에피소드 몇개로 철학이나
문학의 영역에 도전하는 모험을 한 것 같다.

인간이란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쉽사리 드러낼 만큼 단순하지도 않고, 또
우정과 애정을 그렇게 갑자기 헌신짝처럼 버리는 하등동물도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 편집위원 jsr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