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하나가/창틀에 터억/걸터 앉는다//잠시//나의 집이/휘청-한다"
("빗방울 하나가.1"전문)

중견시인 강은교(54)씨가 3년만에 새 시집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문학
동네)를 출간했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삶 저편의 거대한 그림자들을 끄집어낸다.

작은 빗방울 하나에서도 우주의 원형을 발견한다.

"무엇인가가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륵 떨어져 내린다.//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또는 별이든"(빗방울 하나가.
5"전문)

떨어지는 빗방울에서 창과 어둠을 거쳐 별의 이미지로 확장.상승되는 과정이
명징하다.

가슴을 두드리는 울림의 진폭까지 크게 느껴져 온다.

부산 바닷가에 사는 시인은 요즘도 아파트나 연구실 계단을 오르면서
수평선을 자주 바라본다.

수직으로 올라가며 수평의 바다를 조감하는 "감성의 교직".

이것은 시집에서 안과 밖, 벽과 벽 사이, 어둠과 빛, 이슬과 별빛으로 승화
돼 나타난다.

"수로부인의 속눈썹을 보아라/수로부인의 속눈썹에 맺힌 이슬을 보아라/그
이슬에 매달린 귀뚜라미의 등을/그 귀뚜라미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별빛을/
별빛에 누운 그대의 꿈 한 자락을."("수로부인의 속눈썹-향가풍으로"전문)

시인은 백사장에서 흰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를 만나 "더불어 사는 삶"의
소리를 듣는다.

"모래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바닷가/나는 보았습니다/파도들이 달려올 때는
옆파도와 단단히 어깨동무한다는 것을"("파도"부분) 그가 바닷가에서 만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엎드려서 무슨 글자인가를 모래 위에 쓰고 있다, "점순이-"
모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그는 이 한 줄짜리 시를 써놓고 "너무 짧은 사랑 이미지.

-점순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는 무경계의 순간을 노래한 것이다.

바닷가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인에게는 애완견도 또다른 "스승"이다.

"다롬은 우리집 강아지다. 말귀를 알아듣는다. 문닫는다-문닫는다 하면
정신없이 달려들어온다. 하긴 그 이상 무서운 일이 없지... 버림받는
일처럼."("다롬"부분)

그는 강아지 다롬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얘기한다.

문 밖에 홀로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우리 모두 "창틀에 매달려 있는 빗방울 하나, 광막한 모래밭에
소리치고 있는 모래알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그 속에 스며있다.

그는 시집후기 "시인이 쓰는 시 이야기"에서 "올 듯 올 듯 오지 않는 애인
처럼 어렵게 와서 나의 인생줄을 잡아당기고 길을 바꾸어놓는" 시의운명을
들려준다.

그리고는 "시가 제일 시다워지는 순간, 나는 살기 시작합니다.

나는 나의 은유를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은유를 당신의 깨진 거울 조각에 비추어 보십시오"라고 권한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