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도 외부사람에게 내준다고 한다.

중앙부처의 1~3급 직위 7백25개 가운데 무려 1백29개 자리를 외부의 민간
전문가에게 개방한다는 것이다.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장, 교육부 학교정책실장, 행정자치부 인사국장,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 건설교통부 토지국장 등 핵심보직이 수두룩하게
포함됐다.

개방하는 자리의 숫자나 직위의 중요성을 보면 엄청난 변화를 느끼게 한다.

이제 "철밥통" 공직사회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겠구나 하는 기대를 던져
주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바뀌면 일하는 행태가 달라지고 조직의 분위기도 변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공무원 사회는 크게 불안해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렇다는 얘기"라는 표정이다.

우선은 이번에 개방한 1백29개의 자리가 "의무적으로" 밖에 내주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외부 민간인도 잘하면 "임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밝힌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종 판정은 그 자리를 원하는 민간인과 내부 공무원, 다른 부처 공무원을
놓고 심사해 장관이 결정하게 돼 있다.

뚜렷한 기준이나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외부전문가 영입 가능성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공무원을 함부로 자를 수 있습니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데 밖에다 내줄 여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세상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눈치였다.

설사 외부인이 진입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버텨내지 못하는 게 관가의 풍토다

"텃세"가 워낙 심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개방형 임용직보다 한 단계 낮은 계약직 공무원제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1년여전 기획예산처는 14명의 전문가를 계약직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벌써 5명이 떠나갔다.

변호사 회계사 교수 등 전문직 출신인 이들 퇴직자들은 한결같이 "공직사회
의 벽이 너무 두터웠다"고 털어놓았다.

얼마전 행정자치부의 한 서기관은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내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무원사회의 치부를 고발했다.

"동창보험" "고향보험" "동기보험" 등 갖가지 연줄을 꽉 잡아야 살아
남는다는 내용이었다.

공무원끼리도 연줄이 다르면 배척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이렇게 한솥에서 "정부미"를 먹으며 동고동락한 공무원들이
바깥에서 "일반미"를 먹던 이방인을 얼마나 흔쾌히 받아들일 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공직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배타적 연줄문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공직
개방은 "소금밭에 씨 뿌리기"로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 김광현 사회1부 기자 kk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