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폴게티박물관이 소장중인 안토니오 꼬레아의 초상화 "조선사람".

피터폴 루벤스의 작품으로 보이는 그림속 주인공이 조선사람이라는 사실은
제목을 보지 않더라도 단박에 알 수 있다.

버들잎처럼 생긴 눈썹,양미간께서 미끈하게 뻗어 내려온 코는 얼굴선이 굵고
뚜렷한 한국인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문화재연구에 몰두해온 황규호씨의 "한국인 얼굴 이야기"(주류성,
1만3천원)는 우리 민족의 얼굴을 통해 바라본 문화사다.

전국 곳곳에 널려있는 문화재와 외국인이 그린 그림속의 얼굴형상을
끄집어내 그 속에 스며있는 정신문화와 숨은 역사를 들춰냈다.

저자는 20만년 전 구석기사람들이 뼈를 쪼아 만든 "태초의 얼굴"부터 개항
전후의 사진속 인물에 이르기까지의 1백50컷의 얼굴들을 훑으며 얼굴 뒤안에
깔린 사유와 역사를 비춘다.

3세기경에 축조된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 신라의 흙인형 토우는 언뜻보면
흙을 아무렇게나 뭉뚱그려 만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창조의 섭리를 터득한 신라인의 미적 감각이 숨어있다는
것.

촌로의 해맑은 웃음이 담긴 "영감님얼굴"과 금세 울음을 터뜨릴 것같은
비통한 표정의 "종자의 눈물"은 절제와 생략이 빚어낸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토우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성징을 다 드러낸 여인상.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벌거벗은 알몸의 지모"에는 젖가슴과 성기,
임신중인 배가 두드러진다.

저자는 여인의 몸을 대지로 여긴 고대인들의 다산기원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책속 얼굴들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무형문화재 6호인 통영 오광대의 홍백가양반탈은 얼굴이 절반은 붉고 절반은
뽀얗다.

어미 하나와 아비 둘 사이에 태어나서 두 색깔의 얼굴이 된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양반을 풍자한 옛 민초들의 골계미가 절로 느껴진다.

< 김형호 기자 chs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