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옥시케미칼의 김수필 사장은 금요일엔 저녁식사 약속을 하지 않는다.

일본 NHK방송이 매주 한번씩 방영하는 경제토론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다.

최근 관심있게 시청한 토론은 일본 기업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IT(정보
통신기술)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관한 주제였다.

김 사장은 이달초엔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리더십협회
김경섭 박사의 최고경영자(CEO) 조찬강연을 꼼꼼히 메모해 가며 들었다.

"사장이 앞장서 공부해야 임직원들도 따라온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연초 SK옥시케미칼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 사장은 회사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의 취임일성은 ''밀레니엄 인재육성에 사운을 건다''는 것.

이는 사내외 교육의 대폭적인 개혁으로 나타났다.

매월 한번씩 ''자유토론의 날'' 행사를 갖는가 하면 각종 경영세미나를 수시로
열고 있다.

지난 9월엔 한국능률협회 정회원으로 가입, 아예 교육일정을 정례화해
버렸다.

이 회사의 조영호 경영지원 과장은 "올들어 사외교육 세차례를 포함해 모두
10여차례의 교육과정을 마쳤다"면서 "내년도 교육시간은 올해보다 배이상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동아건설의 이승규 고객관리팀장.

그는 쉴새없이 밀려드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마치 입시수험생처럼 공부한다.

작년부터 틈나는 대로 배워둔 인터넷은 이미 전문가 수준에 올라섰다.

토목.건설관련 신기술 교육과 분기별로 실시되는 3박4일짜리 지도자 교육도
기본이다.

그는 연초 동국대학교에서 3개월간 경매사과정을 이수, 자격증을 따냈다.

이 팀장의 아쉬움은 최근 연세대학교의 부동산 컨설턴트과정(6개월)에서
탈락한 것.

"응시자가 워낙 많아 자격미달로 떨어졌지만 내년에 또 도전할 겁니다"

이 팀장이 자기계발에 열성을 보이는 이유는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다.

21세기가 가까워오면서 국내 기업들은 "새천년이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
하는데 여념이 없다.

제일제당의 이재관 전무는 "21세기 기업의 경쟁력은 인재가 내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좌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세계은행 칼 달만 국장도 "인재양성을 게을리하는 기업은 도태되고 말 것"
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아예 정부가 기업엘리트 육성을 천명하고 나섰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최근 "정보통신 바이오산업 등 향후 성장분야의
인재를 육성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생각"임을 밝혔다.

도쿄대와 교토대에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스쿨과 같은 교육기관을 신설
함으로써 비즈니스 엘리트를 길러내겠다는 얘기였다.

밀레니엄 인재상은 회사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가진(Entrepreneurial)" 사람으로 요약할수 있다.

삼성은 "창의성 전문성 끼가 있는 인재"로 규정했고 LG는 "창의력이 풍부
하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국제적인 소양을 갖추고 타인과 협조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전인적 모델을 제시했다.

정부는 "신지식인"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내놓았다.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인재의 특징으론 <>과감한 도전의식 <>참신한 아이디어
<>미래 환경에 대한 예지력 <>전략적 사고 <>뛰어난 전문성 등이 꼽힌다.

왜 이런 인재가 필요한가.

한마디로 기업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삼보컴퓨터는 올들어 미국 현지 판매법인 이머신즈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작년까지 40~50%선이었던 해외매출은 70% 이상으로 늘어났다.

2만원선을 맴돌던 국내 주가는 1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뛰었다.

그러나 이용태 회장은 이때부터 남모를 고민에 빠졌다.

글로벌 경영을 지속하기에는 인재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 회장은 사내 인재개발팀에 특별지시를 내렸다.

"글로벌 인재양성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

"경쟁상대인 IBM 휴렛팩커드 델컴퓨터 등의 교육시스템은 우리보다 월등
했습니다. 그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김영균 인재개발팀 과장)

지난 3월부터 국내외 업체들을 대상으로 벤치마킹에 들어간 삼보는 7월께
"리더십 프로그램"을 최종안으로 선택했다.

세계적 산업교육 전문기관인 미국 프랭클린 코비사(Franklin Covey Company)
의 프로그램이었다.

이미 전임원과 부차장급 이상 간부들이 2박3일짜리 연수를 마친 상태고
8백여명의 일반 사원들도 내년 4월까지 교육을 마칠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이 프로그램을 코비사의 한국합작법인인 한국리더십센터를 통해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부터 과장급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소중한 것 먼저
하기" 프로그램을 실시한데 이어 내년 10월까지 1만여명에 달하는 기흥공장
전사원에도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 회사 김영인 부장은 "직능기술 교육만으로는 21세기 초우량기업으로
살아남는데 한계를 느꼈다"며 "리더십이나 의식개혁 운동을 함께 펼쳐
질적인 변화를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

코오롱상사도 인재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4일부터 19일까지 과장급이상 전 임직원 2백20명을 상대로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리더십"을 주제로 한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5차례에 걸쳐 진행된 교육은 주로 중간관리자의 직무능력, 특히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회사는 또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계약을 체결, 통신교육 프로그램을
운용중이다.

직무관련 서적을 신청해 읽은 후 업무관련 개선사항을 건의할 수 있도록
하거나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김홍기 사장은 "21세기 기업의 핵심 역량은 차세대 리더의 양성에서 나올
것"이라며 "그룹 경영이념인 "원 앤드 온리(One & Only)"에서도 드러나듯
최고의 인재를 개발하는데 적극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수많은 기업들이 인재발굴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양그룹은 기업가적 리더십 배양과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 주는
"뉴리더 혁신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11월부터 사내교육에 학점제를 도입, 외부에서 24시간 이상
교육을 받지 않으면 승진 대상에서 누락시키기로 했다.

SK텔레콤은 사원들이 원하는 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인터넷교육을
도입했다.

보령제약은 국내 제약업계로는 최초로 마케팅 교육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바야흐로 좋은 인재를 키우고 확보하기 위한 기업 전쟁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 조일훈 기자 ji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