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들은 곧잘 지탄의 대상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왜 욕을 먹을까.

그것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거나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때문이다.

사람들은 부자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졸부를 싫어하는 것이다.

정직한 부는 존경받는다.

옛 선비들도 청부의 뜻을 높이 샀다.

땀흘려 일하고 돈을 모아 풍요로운 삶을 가꾸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
이기도 하다.

개인이나 국가나 다들 잘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가계와 기업이 윤택해지면 나라 경제도 발전한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야 문화의 향기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모 재벌이 해체됐다.

전에도 그런 일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해체의 여파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연결돼 있다.

그때문에 이해득실에 따른 희비가 교차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도양단식 평가에 있다.

어수선한 사회에서는 옳지 못한 방법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이 많이
생겨난다.

그러나 성숙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직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쌓고 이를 훌륭하게 쓸 줄도 안다.

이럴 때 "가진 자"는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붙이는 흑백논리는 얼마나
위험한가.

가끔 강변에 있는 호화별장이라는 곳들이 카메라에 비친다.

그리고 매번 관리인의 비슷한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너무 흥분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 중 상당수는 그냥 사람사는 집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호화"의 기준이 아니라 "불법"의 여부일 것이다.

강변을 끼고 가다 보면 무질서한 카페들이 줄을 선다.

그 옆에는 모텔들이 늘어서 있고 경치가 좋은 곳에는 똑같은 전경이
이어진다.

전 국토가 그렇게 변했다.

이제 우리는 카페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불법과 졸부의 그림자에 발목잡혀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방송에 백화점 수입코너의 몇 백만원, 몇 천만원 하는 밍크옷이
등장하면 그것을 보는 동안 "저런 죽일..."하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고 그
옷을 사 입을 수 없는 사람들의 소외감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도 사고가 경직돼 있으니까 잘살고 못사는 차이를 불의와 정의, 거짓과
참됨으로 단순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절름발이 사회가 된다.

물론 나는 몇 백만원하는 옷은 입고 싶지 않다.

그럴 여유도 없지만 그보다 훨씬 싼 옷을 입어도 행복하니까.

말하자면 우리들의 마음에도 졸부와 청부가 있다.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의 청부"는 우리를 진짜 행복으로 이끌어준다.

사회는 졸부에 대해서 너무 떠든다.

마치 내가 가지지 못함을 분풀이라도 하듯, 온갖 비리를 세세히 보여주어
너무나 바르게 살고 너무나 착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자주, 자꾸 무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정직하게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우리들과 멀어지게
하고 있다.

어떤 매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시킨다.

자칫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분법으로 몰아갈 위험도 있다.

사실은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

아주 작은 표현부터 시작한다면 몇 사람이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실 때
여유 있는 사람이 계산을 한다.

동문회에서도 여유 있는 사람이 큰 돈을 내 놓아 장학금도 주고 행사도
무사히 치른다.

이재민이 생기면 더 큰 부자들은 우리들이 상상못할 돈도 내놓는다.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더 많은 사람들을 쓴다.

"수의 피라미드"라는 게 있다.

생물의 개체수 사이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데 맨 밑에 생산자, 그 위가
제1차 소비자, 그리고 제2차 소비자와 같은 식으로 개체수를 쌓아 올라가면
피라미드 모양이 되기 때문에 그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가장 꼭대기는 대형 동물이 차지하고 가장 밑에는 초식성 동물로서 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대형 동물이 그들의 먹이가 되는 동물보다 빨리 불어나는 일은 거의 없고
공급되는 먹이를 전부 먹어 치우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자연은 얼마나 엄격한 균형을 가진 것인가.

그러나 부의 피라미드는 어떤가.

그런 엄격한 균형을 가진 "수의 피라미드"가 오히려 그립다.

오늘밤, 내가 세상 모르게 깊이 잠들었을 때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

노래를 들으며 차를 마실 때 어떤 이는 입이 바싹바싹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몇 줄의 시를 밤 새워 쓰다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밖에 나가면 차가운
공기가 덤비듯 미친듯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제 몸 돌아보지 않고 가족마저 희생시키며, 밤낮없이 땀흘리는 그들.

온 몸으로 청부의 신화를 만드는 그 부자에게 나, 가장 밑의 초식성 동물
로서 머리숙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