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석 정진숙 회장은 1912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보와 보성전문을 거쳐 은행에 근무하던중 광복을 맞아 민병도 조풍연
윤석중씨 등과 더불어 을유문화사를 세웠다.

출판을 통해 잃었던 우리글과 말 역사를 되살려 새조국 건설과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하겠다는 각오였다.

정회장과 동인들은 당시 "을유문화사 출판의 지향"이라는 수칙을 마련했다.

"원고를 엄선해 민족문화 향상에 기여하자. 교정을 엄밀히 해 오식이 없도록
하자. 제품을 지성으로 해 독자의 애호를 받자. 가격을 저렴히 해 독자에게
봉사하자" 등은 이후 50여년동안 을유의 변함없는 지침이 됐다.

46년 2월 첫책으로 한글글씨본인 "가정글씨체첩"을 발간하고 최초의 어린이
주간지 "주간 소학생"과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의 "청록집" 학술서인
"조선문화총서" 한국역사소설의 최고봉 "임꺽정"을 잇달아 펴냈다.

그러나 6.25로 사옥이 전소되는 등 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동인들은 떠나고
정회장 혼자 을유를 떠맡았다.

정회장은 이후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문학전집" "한국역사소설전집"
"한국사" "세계사상교양전집" 등 교양과 학술서적 출판에 진력했다.

"한국어 큰사전" 등 각종 사전을 내놓고, 젊은층을 위해 "을유문고"
총2백69권을 간행했다.

을유가 50~6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중장년층에게 특히 잊지 못할 추억의
이름이자 양서의 산실로 여겨지는 것은 학창시절을 을유의 책과 함께 보낸
까닭이다.

50여년을 오직 좋은책 만들기에 힘쓴 정회장이 엊그제 출판계의 축하 속에
미수연을 가졌다.

대중성과 저속성이 구분되지 않고 경제적 이익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지금 "세상에 내놓아 떳떳한 책만 만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아온 정회장의
담담한 고백은 사람을 숙연하게 한다.

"긴 세월 출판외길을 달려오다 보니 흔히 말하는 천직이란 것이 그냥
수월하게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각고의 노력과 인내로써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철리 비슷한 것을 깨닫게 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