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123"이라는 숫자와 묘한 인연이 있다.

97년 1월23일.

한보철강이 부도를 냈다.

그때부터 경제위기는 시작됐다.

97년 12월3일.

IMF는 부도상황에 처한 한국에 5백7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치욕의 날이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한국경제는 12.3% 성장했다.

희망이 꽃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위기를 극복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숫자가 주는 의미는 각각 다르다.

시대상황도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한국경제가 전기를 맞는 시기라는 점이다.

3.4분기중 경제성장률 12.3%는 "어떻게 하면 견실한 성장을 이어갈 것인가"
라는 과제를 던져 준다.

고성장은 자칫 한국경제를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뜨릴 수도 있다.

성장률에만 도취되면 실업자들의 고통을 등한시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경제전문가들은 3.4분기 GDP 발표를 대하면서 우리가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 3.4분기 성장내용 =정정호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올들어 소비가 성장을
이끌었으나 3.4분기에는 수출이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설비투자의 기여도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성장의 추진력이 소비에서 수출.투자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2.4분기의 6.8%포인트에서 9.5%포인트로 확대됐다.

수입까지 감안한 순수출 기여도도 종전에는 마이너스였으나 이번에 플러스
로 돌아섰다.

설비투자의 경우 기여도가 3.3%포인트에서 4.1%포인트로 상승했다.

다만 건설투자는 아직도 저조해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12.3% 가운데 2%포인트 깎아먹었다.

1.4분기중 성장률을 밀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던 재고증감의 경우 재고
감소폭 둔화로 그만큼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상대적인 비중은 다소 떨어졌다.

그러나 꾸준히 성장에 5%포인트가량 영향을 주고 있다.

한은은 바람직한 성장패턴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과거 경기 사이클을 분석한 결과 수출이 성장을 주도한 때에는 경상수지나
물가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경기확장국면이 장기화됐다는 것이다.

또 3.4분기중 제조업종간 성장격차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것도 좋은
조짐이다.

반도체 정보통신 자동차 등 3대 업종의 전체 제조업 성장기여율은 상반기중
79.2%에 달했다.

3.4분기에는 65.7%로 하락했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34.3%에서 20.2%로 낮아졌다.

절대 수준만 보면 이들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게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완화되고 있는 것이다.

<> 과열인가, 진정책 필요한가 =전분기 대비로 봤을 때 3.4분기는 3%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연율로 환산하면 성장률은 12%에 달한다.

비록 1분기(4.1%) 2분기(3.9%)의 전분기대비 성장률보다는 다소 둔화됐지만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따라 현재 경기가 과열인지에 대한 논쟁도 다시 불붙고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 아직 과열단계에 진입한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내년중,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는 과열로 들어갈 공산이 크다고 전망
한다.

정부가 정책수단을 고를때 유념해야할 대목이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과열은 성장률로 판단하는게 아니다"며
"아직은 디플레갭이 있기 때문에 당장 긴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채창균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도 "수요억제는 물가를 잡을 수 있지만
GDP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며 "공급능력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을 확실히 추진한다든가, 합리화 자동화 정보화쪽에 투자가
쏠리도록 인센티브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는게 채 팀장의 조언이다.

그러나 경기조절이 필요한데도 너무 방치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김세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경기는 올라가는데 금리 상승은
막혀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경기조절기능이 무력화된 상태"고 꼬집었다.

그는 이로인해 주가와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는 자산버블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수요면에서의 과열은 없지만 통화.
정책정책의 확장일변도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성태 기자 stee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