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선 사람이 발자국 모양 위에 서면 약 8초 동안 섬광이
수 십번 터진다.

나이트 클럽의 조명이나 놀이공원에 있는 요술의 집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 6대가 연속해 터뜨리는 플래시다.

잠시 후 이 방과 연결된 컴퓨터에는 여러가지 수치가 올라온다.

바로 방에 있는 사람의 신체 사이즈다.

이 장비는 보디 스캐너(Body Scanner)로 신체 사이즈를 정확히 재는 장비다.

주로 옷을 맞출 때 쓴다.

재봉사에게 옷을 맞추려면 꽤 오랫동안 줄자로 여기저기를 재야 한다.

보디 스캐너를 쓰면 불과 53초만에 정확한 수치를 얻을 수 있다.

인체의 30만개 점을 체크해 사이즈를 내놓기 때문에 수치는 "자로 잰 듯"
하다.

여러 사람을 표본으로 뽑아 보디 스캐너로 신체 사이즈를 잰 뒤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면 표준도 구할 수 있다.

성별 연령별 인종 등으로 세분해 표준을 얻으면 "대량 맞춤
(mass customization )"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현재 미국 의류 업체들이 기준으로 삼는 신체 표준은 지난 30년대에 미국
농업국이 만든 것이다.

실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의류 업체들에 따르면 미국인의 50% 이상은 표준 사이즈 옷을 입지 못한다.

보디 스캐너는 미국 섬유산업연합회 부설 비영리법인인 TC2
(Textile Clothing Technology)가 개발했다.

미국 섬유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TC2는 대량 맞춤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로 이 장비를 개발했다.

같은 비영리 민간기구로 각종 표준을 다루는
아메리칸스탠더즈테스팅앤드머티리얼스(ASTAM)는 보디 스캐너를 이용해 오는
2002년까지 미국인의 신체 표준을 새로 구할 계획이다.

인종이나 나이 등에 따라 세분화한 표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디 스캐너는 아직 가격이 비싸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흠이다.

값은 10만달러(1억2천만원)로 웬만한 맞춤옷 가게는 엄두를 내지 못할
수준이다.

크기도 만만찮아 의류 매장에 설치하기엔 적당하지 않다.

남녀 탈의실까지 합쳐 가로 3.6m, 세로 6m로 큰 방만한다.

TC2는 지금까지 이 장비를 4대 팔았다.

가장 먼저 이 장비를 산 곳은 미국 해군.

장병들에게 딱 맞는 옷을 맞춰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 대는 한 섬유산업 관련 민간단체가 사서 뉴욕의 맞춤양복 전문점에서
홍보를 겸해 쓰고 있다.

또 한 대는 섬유를 연구하는 대학에서 사갔다.

TC2는 마지막 한 대를 사간 곳의 이름은 물론 업종 등 성격을 추측할 만한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 김용준 기자 dialect@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