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천재의 역사''
저자 : 미셸 사켕 외저,
역자 : 이혜은/정희경 역
출판사 : 끌리오
가격 : 각권 10,000원(전 2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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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초에는 천재 이야기가 유행한다.

19세기와 20세기초에도 그랬다.

새로운 시대를 맞는 사람들이 신동과 창조성이라는 화두에 매료되는 것이다.

21세기를 맞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평범과 비범의 경계에서 새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한다.

프랑스 지성들이 공동집필한 "천재의 역사"(미셸 사켕 외저, 이혜은.정희경
역, 끌리오, 전2권, 각권 1만원)는 그러나 예전의 유행과 다른 관점에서
신동들을 조명한다.

그들의 "창조적 조숙성"을 역사.철학.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이
인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당시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핀다.

천재란 육체적 젊음과 정신적 성숙, 노인의 지혜와 젊은이의 힘을 합친
존재다.

열여섯살에 파리 아카데미 회원들을 들뜨게 만든 파스칼이나 여섯살 때
전 유럽을 놀라게 한 모차르트는 "어린 노인"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신동들은 역사의 주류가 아니었다.

과거의 신동은 특별한 재능을 지녔지만 의심스러운 존재로 비쳐졌다.

중세에는 악마적 근원과 위험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됐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중세인들의 눈에 어린 예수는 조숙하고 재능있는 절대자로 인식됐고 모든
면에서 닮고싶은 원형이었다.

이때문에 조기교육 붐이 일었다.

이유식 그릇에 알파벳을 새겨 자녀학습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신동들의 황금기는 르네상스 시대에야 비로소 열렸다.

16~17세기 사람들은 어린 학자와 재능있는 소년 음악가, 천재 화가, 열한 살
난 시인들을 신뢰했다.

그러나 그들 작품의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회학에서 천재라는 개념은 18세기 중반 독일에서 질풍노도운동을 거치면서
완성됐다.

전대에는 고대인의 모방과 규칙준수,겸손을 이상으로 삼았지만 이 시대에는
자연에서 영감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고난속의 천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사람들은 빅토르 위고를 비롯 플로베르, 랭보 등 천재성 때문에 주변인으로
맴돌던 청년 시인들의 신화에 열광했다.

20세기의 천재는 어떤 의미에서 환멸의 시대를 맞는다.

왜 그랬을까.

학교교육이 제도화됐고 규범과 획일성이 아이들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제 천재성은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체계적인 수련과정을 통해 갈고 닦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천재는 만들어진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 그 많은 신동들의 뒤에는 길을 열어준 부모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다.

모차르트 아버지의 극성은 유별났다.

의자에 앉아도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아이가 클라비어(피아노의 전신)를
신들린 듯 연주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고 그런 아들의 재능을
온 유럽에 알리기 위해 아버지는 숨은 정성을 다했다.

모차르트도 "내 재능의 부적은 천재성이 아니라 연습"이라고 고백했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밤늦도록 아들을 피아노 앞에 붙들어두고 재능을 키웠다.

파스칼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기 위해 아예 파리로 삶터를
옮겼다.

천재들은 남들과 다른 재능 때문에 오히려 고독했다.

그런 외로움 속에서 유년기의 천재성과 진정한 예술가의 자질을 구분하는
자각도 싹텄다.

피카소는 "미술에서 기적적인 어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숙한 천재가
위대한 화가로 성숙하려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여러번 말했다.

2권 후반부의 "깨진 천재의 환상"에는 천재를 지능지수와 과학.심리학으로
분석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지능과 재능을 측정하려는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천재성이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에게나 없는 능력이며 항상 사회가
우선시하는 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게 결론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역할.

나뭇잎을 광합성 작용으로 푸르게 만들 수도 있고 단풍으로 붉게 물들게 할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세계의 저편을 발견하는 능력과도 닿아있다.

비범의 우물에서 평범의 깊이를 재는 것이 천재들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신동 존 카레 메릭(1861~1890)의 자서전에 인용된 아이삭 와츠의 시 구절이
이를 대변한다.

"만일 내가 지구의 끝에 닿을 수 있을 만큼 크다면, /혹은 나의 품안에
바다를 넣을 수 있을 만큼 크다면, /나는 나의 영혼으로 키를 재도록 할
것이다. /정신은 인간의 척도인 까닭에."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