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틀에 얽매인 현대인들에게 해방의 메시지를 던지는 아사다
아키라의 "도주론"(민음사, 1만원)이 번역 출간됐다.

아사다는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등 일본의 대표적 지성에 견줄만한
신세대 지식인.

84년 출간된 이 책은 철학서로서는 드물게 10만부 이상 팔렸으며 "아사다
아키라 현상"이란 용어를 유행시켰다.

당시 20세였던 그에게는 "지적 게릴라"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아사다는 현재 서양철학을 신속히 수용해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면서
현대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예리한 비판을 가하는 일본의 대표적
이론가로 자리잡았다.

모두 3부로 구성된 "도주론"에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어우러져 있다.

저자 나름대로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게 아니라 여러 잡지에 실렸던
원고를 모아 재배치했기 때문에 어려운 철학서라기보다는 현대사상에 대한
재기발랄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1부 "탈주하는 문명"에서는 들뢰즈.가타리의 "앙띠-오이디푸스"와 "천의
고원"에서 자주 사용되는 "탈주" "유목" "차이" 등 일련의 개념을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놓고 있다.

이를 토대로 그는 현대사회의 "대탈주 현상"을 설명한다.

특히 남자가 가정으로부터 혹은 여자로부터 도망치려는 현상을 일시적.

부분적 경향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물결이라고 진단한다.

즉 "정주하는 문명"에서 "도망치는 문명"으로, "편집증형 인간"으로부터
"분열증적 인간"으로의 대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증형 인간"은 가정을 이루고 영토를 확대하며 재산을 축적하는데
몰두한다.

이에 비해 "분열증적 인간"은 가정이라는 중심을 갖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선에 몸을 둔다.

각자의 고정된 성적 역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게이나 레즈비언도
"분열증적 인간"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2부 "포스트구조주의로 읽는 마르크스"에선 현대사상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아사다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관심영역에서 사라져버린 마르크스주의를
포스트구조주의의 관점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일본에서 어떤 책들이 현대사상의 중심에 서있으며 학술적 논의의 수준은
어떠한지에 대해 3부 "지식의 최전선으로의 여행"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 강동균 기자 kd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