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은 반드시 썩는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네루가 남긴 만고불변의 진리다.

절대권력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의미한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권력 남용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3권분립과 지방자치 등 수평적 수직적 권력 분할과 그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자유를 필수요건으로 삼는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이런 면에서 인간에
대한 불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검찰과 청와대를 집어삼킨 "옷로비 사건"의 불길이 언제 꺼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에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왕과 비" 식으로 말하면 이 사건은 원래 "외명부"의 추문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 "의금부" 관리들이 엉터리 조사를 하고 "임금"에게 거짓 보고를
하면서까지 진상을 감추었다가 들통이 나면서 정치 문제로 비화했다.

이번 사태는 김대중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지난 시대 가장 강력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군부와 안기부였다.

정치군인들의 입김이 사라지고 정보기관의 권력남용에 제동이 걸린 이후에는
검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김대통령은 야당후보 시절 특검제와 인사청문회 도입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권력기관의 정치적 편향성과 권력 남용을 경계하는 이들은 이 공약을 적극
지지했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민회의는 이 약속을 파기해 버렸다.

비극은 여기서 싹텄다.

우리 검찰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정의보다는 거기 몸담은 사람들의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다.

학연과 지연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뒤엉킨 이번 사건에서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진상과 정반대의 조사결과를 보고함으로써 대통령의 귀를
막았다.

지금까지 특검팀이 밝혀낸 것의 절반만이라도 진상에 접근하는 보고를
했더라면 "정치9단"인 대통령이 김태정씨를 법무부장관으로 기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엘리트 검사라는 박주선 비서관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지 않은 것은
연정희씨가 인간적으로 절친한 선배인 검찰총장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나온 검찰의 정식 수사결과가 사직동팀 조사결과와
거의 일치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검찰조직의 풍토는 일선 검사들이 법무부장관 부인의 추문을 낱낱이 캐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옷로비 특검팀과 달리 내분과 검찰의 비협조로 좌초상태에 빠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팀을 보라.

최병모 특검팀의 공세적 수사에 대한 검사들의 비난과 저항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검찰조직은 사실상 대통령 한 사람의 통제만을 받는다.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 조직을
지휘하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전혀 없다.

12.12 쿠데타 불기소 처분 번복, 서경원 사건 재수사 등에서 보듯 검찰은
정치적 풍향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검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정치를 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국민의 정부" 첫 법무부 장관이었던 박상천 의원이 "국민의 정부 시대에는
검찰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없다"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내세워
특검제 공약을 파기한 데서 보듯 대통령의 참모들은 "검찰을 데리고 하는
정치"에 일찍부터 맛을 들여 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수사책임자가 피의자에게 수사보고서를 유출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짓까지 버젓이 저지른 "옷로비 은폐조작 사건"은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검찰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런 일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권력기관이 관련된 범죄를
전담하는 상설적 특검제와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 시사평론가/성공회대 겸임교수 denkmal@hitel.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