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김입삼 회고록 '시장경제와 기업가 정신'] (77) '필리핀..'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방문 ]

    타이베이에서 필리핀 마닐라로 향했다.

    필자로선 두번째 찾는 마닐라다.

    첫번째는 64년 아시아 생산성본부 회의였다.

    보여 줄 공장도 별로 없는 필리핀에서 왜 생산성회의를 개최하는지
    의아했다.

    그러나 첫 방문과 이번 방문에서 느끼고 얻은 것은 적지 않았다.

    첫 인상은 필리핀 사람들이 이것저것 자기 자랑하는데 어리둥절했다.

    자기나라는 "태평양의 진주(Pearl of the Pacific)"이며 아시아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중추고리라고 자랑했다.

    심지어 필리핀대학 의과는 아시아에서 으뜸이라고 떠들었다.

    또 아시아에 관한 국제기구는 당연히 필리핀에 본부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소득은 거의 2백달러.

    당시 1백달러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는 한국의 처지로서 부럽기만 했다.

    필리핀 항공은 우리 일행에게 헬리콥터 비행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지정학적
    위치 관계로 세계적 주요 항공노선이 죄다 마닐라에 기착하는 것이 부럽기만
    했다.

    홍콩 도쿄와의 노선만 겨우 주 2~3회밖에 없는 초라한 한국 항공에 비할
    바 아니었다.

    67년 방문에서 필자의 관심사는 "아시아 경영원, AMI(Asia Management
    Institute)"였다.

    설립자는 씨시프(D Scyipe) 회장으로 세계적 규모의 회계법인 소유주였다.

    당시 2천여명의 공인회계사 변호사 경영분석가들을 채용하고 있었다.

    세계은행이 동남아 중동 등에 제공하는 프로젝트의 타당성 조사는
    씨시프회사가 독점하다시피 했다.

    씨시프 회장은 화교출신이다.

    1백50cm 약간 웃도는 단신으로 중국 등소평을 연상시켰다.

    지혜로 똘똘 뭉쳐있는 풍모를 지녔다.

    씨시프 회장은 직접 AMI 에 대해 설명했다.

    명칭 그대로 필리핀학생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젊은층에 현대경영을
    가르치는게 목적이라고 했다.

    본인은 교과목, 연간 운영비, 재단 규모 등 구체적인 질문과 더불어
    관련자료를 얻었다.

    오늘날 전경련의 IMI(국제경영원) 발상은 이 AMI가 촉매제였다.

    70년대 초, 씨시프 회장이 동남아 각국에 있는 지사와 인맥을 활용,
    "아시아비즈니스 지도자 회의"를 결성해 주도록 필자가 제안했다.

    이 회의는 후에 "한.아경제지도자회의(Korea-Asia Business Leaders''
    Conference)"라는 이름으로 서울과 동남아 5개국에서 돌아가며 개최하는
    회의로 발전했다.

    다음 기착지는 태국 방콕이다.

    태국과는 당시 이렇다 할 협력구상이 없었다.

    다만 태국은 경제개발계획을 막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우리의 5개년계획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영국식 표현으로 "Board of Trade"라고 칭하는
    경제기획원에서 5개년계획 내용, 특히 작성방법 등에 대해 필자가 설명했다.

    태국에 와 지정학적 위치로서의 방콕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한국은 너무나 지구상에서 벽지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지의 불리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싱가포르는 우리 제주도 크기의 작은 나라지만 국부로 일본 다음가는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었다.

    싱가포르는 동서교통의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전략적으로 활용,
    경제발전의 추진력으로 삼았다.

    항만 부두 항공분야에서 세계제일의 효율성을 유지했다.

    뿐만 아니라 거국적으로 정보화 사회건설에 매진하고 있으며, 홍콩과는
    아시아 금융시장의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67년 우리가 방문했을 때 싱가포르의 개발열기는 대단했다.

    경제사절단 15명은 호텔독방을 얻지 못해 홍재선 김용완 회장까지 한방을
    같이 써야 했다.

    필자도 같이 간 동아일보 이태주 사장과 같은 방을 썼다.

    부두도 확충일로에 있었고 아파트건설도 잇따랐다.

    싱가포르 시가는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다.

    휴지나 껌을 도로에 버리면 벌금을 내야 했다.

    "법과 질서" "자유와 책임"은 리콴유 수상 국가운영방식의 골격이었다.

    최근 발간한 그의 자서전에서도, 또 지난 10월 하순 서울 "국제자문단회의"
    에서도 리콴유는 이를 거듭 역설했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9일자 ).

    ADVERTISEMENT

    1. 1

      [토요칼럼] '후덕죽의 칼'이 주는 교훈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2’에서 가장 시선을 끈 출연자 중 하나는 후덕죽(候德竹) 셰프다. 신라호텔 팔선 출신으로 올해로 57년째 ‘웍질’을 하고 있는 한국 중식계의 산증인이다. 요식업계에선 전무후무한 ‘셰프 출신 그룹 임원’(신라호텔 상무)이라는 타이틀을 단 인물이기도 하다. 잿빛으로 센 머리와 주름진 손등은 오랜 시간을 단련한 증표다.그는 경연 내내 말보단 태도로 ‘어른의 품격’을 보여줬다. 팀 대항전에서 후배 임성근 셰프가 소스 담당을 자처할 때, 팀원들 사이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반신반의하는 눈빛 사이로 후 셰프는 짧고 단호하게 말한다. “여기(임 셰프)가 리더해.” 의심을 걷어내고 책임을 건넨 한마디였다.압권은 그다음 장면이다. 임 셰프가 후 셰프의 칼을 허락도 없이 집어 들어 거침없이 마늘을 으깨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요리사에게 칼이란 전쟁터의 총이자 자부심 아닌가. 그럼에도 그의 입에선 호통 대신 격려의 말이 흘러나온다. “(내) 칼을 아주 잘 쓴다!” 거장이 보내준 무한한 신뢰 덕이었을까. 그가 속한 백수저팀은 임 셰프의 소스를 넣은 요리로 대중평가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이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은 이유는 우리 사회의 풍경과 정반대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댓글창 등 오늘날의 공론장엔 다른 세대를 향한 날 선 대화만 가득하다. 기성세대는 젊은 층을 ‘MZ’라는 편리한 카테고리로 묶어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집단’으로 치부한다. 반면 젊은 층은 나이 든 세대를 ‘꼰대’라고 칭

    2. 2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읽는 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시끄러운 평화 협상 과정보다 중요한 뉴스는 유럽이 향후 2년에 걸쳐 신규 자금 1050억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역량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머릿속에서 작동하던 ‘희망의 시간표’를 뒤흔든다.이번주 푸틴 측 약점이 드러났다. 푸틴은 군 지휘관과의 공개 회의에서 전황에 관해 과장된 보고를 들었다. 푸틴의 ‘노쇠한’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푸틴 거처가 우크라이나 드론 91대의 비열한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목격자도 없다. 약점 드러낸 푸틴트럼프는 중립적이고, 이해관계 없는 중재자 역할을 하며 그의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훈련, 전술 정보를 지원하고 있다. 푸틴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미국 무기는 여전히 공급되지만 유럽을 경유해 세탁된다. 트럼프의 정치적 위신은 공식적으로 ‘평화’ 외에 어떤 특정 결과에 걸려 있지 않다. 그는 진정으로 중립화된 우크라이나가 자신이나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사실 트럼프는 여러 가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며 방향을 탐색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장은 실제 평화가 성립되기 어렵다. 푸틴의 계산을 바꿀 ‘몽둥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비판자들이 기다려온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도 있다. 이 전쟁은 결국 ‘트럼프의 전쟁’이 될 것이다. 그는 푸틴과의 확전 경쟁에 나서야 할 것이고,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이 크지만 ‘MAGA(미국을 다시

    3. 3

      [취재수첩] 기술 빼앗긴 기업이 법정서 피해 숨기는 이유

      “기술 유출의 실질 피해자인 기업이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지난달 경남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재판부는 장보고함-Ⅲ 기술을 대만에 넘긴 전직 해군 중령인 방위산업 기업 대표 A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A씨는 2019~2020년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기술자를 통해 불법 반출한 도면 등 핵심 기밀을 총 1억1000만달러에 대만에 팔아넘기려 했다.하지만 한화오션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잘 모른다” “범죄와 관련 없다” 같은 답변으로 일관했다. 재판부가 “실체 규명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화오션이 법정에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한국 잠수함의 핵심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해외로 넘어갔는지 실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방산기업이 과거 기술 유출 의혹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배경에는 ‘방산 기술 보안감점제도’가 있다. 2014년 이 제도를 도입한 정부는 보안사고가 발생한 방산기업의 정부사업 입찰 평가 점수(100점 만점)를 3년간 3점 감점한다. ‘기술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 대한 일종의 벌점이다. 업계에선 “결과는 1점 이내에서 갈린다”며 “‘-3점’은 사실상 입찰 탈락을 의미한다”고 말한다.방산기업과 달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첨단 제조 기업은 범죄가 확인되면 내부 가담자를 즉각 색출하고 수사기관에 적극 협조한다. 세계 2위 수준의 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POE) 기술을 유출당한 LG화학은 현재 진행 중인 2심 재판부에 “엄정히 처벌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유독 방산기업만 기술 유출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