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 연주회에서 대중적인 작품을 대하기는 쉽지 않다.

프로코피에프 스크리아빈 메시앙 라벨 무소르그스키 등 중후한 느낌의 현대
작곡가들을 주로 연주하는 것이 그만의 특징이다.

음악 자체에 대한 진지한 탐구정신과 20세기 음악의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욕 때문이다.

그런 그가 새천년의 문턱에서 베토벤을 들고 나타났다.

30일 예술의전당에서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마틴 인 더 필즈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한후 다음달 10일부터 23일까지
6회에 걸쳐 베토벤 3대 후기 피아노소나타인 30-32번(작품 1백9-1백11)을
전국 6개도시를 돌며 순회 연주한다.

2000년 첫날에는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에서 임헌정이 지휘하는 부천시향과
함께 베토벤 합창환상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새천년을 여는 백건우의 "베토벤 페스티벌"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특별한 의도로 세 연주회를 기획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백건우는 "처음엔 3대 후기 소나타를 연주하는 데 주력했으나 신년음악회와
세인트마틴 콘서트의 협연자로 제의받은 김에 베토벤으로 이어나가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백건우가 베토벤을 멀리했던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연주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그는 "베토벤 곡은 오랜 시험과 고생끝에 완성된 곡이 대부분이어서 그
언어가 겹겹으로 싸여 있다"며 "곡을 소화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도 새로운 뭔가가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연이지만 새천년을 맞아 국내 무대에서 베토벤을 세차례나 연주하게 돼
기쁨을 감출 수 없다는 표정이다.

백건우가 3대 후기 소나타를 동시에 연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감정의 연속성을 살리기 위해 인터미션(연주회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진행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이번 연주회를 계기로 내년에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3대 후기 소나타를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3대 후기 소나타는 유명한 베토벤의 "월광" "비창" "열정" 소나타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음악.

귀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된 50-52세때 창작됐기 때문에 베토벤의 치열한
음악정신과 내면의 성찰이 어떤 작품보다도 빛을 발한다.

백건우는 "30번은 천진난만한 젊은 미소, 31번은 인간존재에 대한 의문과
삶에 대한 집착, 32번은 이들을 초월해 음악자체의 신비감을 담은 곡"이라고
설명했다.

합창환상곡은 베토벤이 9번 합창교향곡을 작곡하면서 동시에 쓴 곡이어서
합창교향곡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다.

백건우는 "피아노협주곡이면서 현악4중주 목관솔로 합창 등 다양한 장르가
함께 나오는 찾기 힘든 곡이어서 묘미가 배가된다"고 선곡배경을 밝혔다.

< 장규호 기자 seinit@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