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 절상 용인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9일에는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원화절상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 원화가치가 급등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외환딜러들에 따르면 외환당국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원화가치
절상을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화가치 상승은 수입물가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국내물가는 상승압력을 덜 받는다.

인플레이션을 막는데는 이자율을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현재 채권시장이
경색돼 있는 상황이어서 이는 금융불안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

외환딜러들은 외환당국이 이같은 논리에 근거해 절상속도만 조절하는데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원화가치 절상 용인론은 한덕수 본부장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됐다는게
딜러들의 분석이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고 있는 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 회의에 참석중인 한 본부장은 "일본 엔화가 계속 강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원화가 수출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

그는 "비용구조의 측면에서 한국 기업들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며 "원화절상이 수출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주말 달러당 1천1백59원80전로 마감했던
원화가치(미국 달러화 대비)는 이날 1천1백59원에 첫시세를 형성한 뒤
1천1백55원50전까지 뛰어오르는 급등세를 보였다.

당국이 서둘러 3천만~4천만달러가량을 사들이면서 절상추세가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흐름을 되돌려 놓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본부장의 발언에 대해 외환당국은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무리한 시장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며 "그러나 당국자도 아니면서 그같은 발언을 하는건 국익에
손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환시장은 공인된 거짓말이 용인되는 시장"이라며 "시장에 부담을
주는 얘기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시장관계자들은 환율문제와 관련, 정부 방침의 일단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했다.

게다가 일본 엔화마저 강세를 보이고 있어 원화절상 용인론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씨티은행 최정혁 차장은 "한국은행은 요즘 시장에 넘치는 물량만 거둬 가는
정도에 그친다"며 "원화가치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수출업체들이 네고물량
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화가치가 1천1백55원 수준까지 절상되자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NDF(차액결제선물환) 거래를 하는 세력들이 8천만달러 가량을 팔기도 했다"
고 전했다.

절상기대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원화가치 전망도 하루게 다르게 수정되고 있다.

ABN암로은행의 윤석범 딜러는 "내년초에는 1천1백원대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올 연말에는 Y2K(컴퓨터의 2000년 연도 인식오류) 문제로 인해 절상
추세가 다소 주춤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연말이 되면 금융기관들이 딜(deal)하는 것 자체를 꺼릴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이창훈 과장도 "당분간 1천1백50원선이 지켜질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원화절상 용인론이 확산되는데 대해 수출업체들은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한국의 외환시장은 아직도 외생변수들에 좌우되는 천수답
구조"라며 "이런 속도로 원화가치가 절상되면 채산성은 형편없이 떨어질 것"
이라고 우려했다.

< 이성태 기자 stee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