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태, 특히 국회 등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보고 개탄하는 국민의
소리가 높다.

그런데 실상은 이런 사태나 개탄의 소리가 오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들 주변에 늘 있던 일이다.

역사적으로 국민의 힘에 의해 진정한 의미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그래서 "국민의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성급한 기대가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수도 있다.

국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정치 무감각증이 혐오감으로 치닫는다면
"참여의 정치"를 내걸고 있는 정부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의 1차적 책임은 물론 정치지도자나 국회의원들에게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지도자로 만들어주고 선택한 국민들- 특히 정치적 냉소증에
빠져 있는 이 땅의 지식인들은 면책될 것인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유독 우리국민들은 건망증이 심하다고 자조한다.

수백명의 인명을 앗아간 참사들이 줄을 잇는데도 사흘만 지나면 깡그리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가로운게 우리들이었다.

속담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들이 까마귀를 많이 잡아먹어서 일까.

그런데 사실은 언제인가부터 우리들녘에서 까마귀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잡아먹을 까마귀도 없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메커니즘이 있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고, 망각 없이는 인생을 살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슈베르트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한 곡을 쓰고 나면 며칠 전에 썼던 다른
작품들은 곧잘 잊어버리곤 했다.

우리 국민들의 건망증을 치유하기 위해 정신의학자 사회병리학자 사회
심리학자 그리고 교육자들이 총동원되어 방법을 강구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진정 "망각해야 될 일"들을 되풀이하는 국민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