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 병원경영연구원장 / 아주대 부총장 >

국내 의료보험 재정상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국은 의료기관들의 보험청구액중 약품비가 30%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는
선진국의 15%에 비해 너무 많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따라서 보험재정을 안정시키고 약품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서 보험청구액중
약가부분을 심할 정도로 줄이고 있다.

그러면서 당국은 의사 또는 병원들이 부당하게 "과잉처방" 또는 "과잉청구"
한다고 대중매체에 매도까지 한다.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은 정 그렇다면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값이 싸기에 저질일 수 있는 약을 환자에게 처방하는 현상이 일고 있다.

여기서 최종 피해는 결국 누구의 몫이 될까.

의료보험 청구액중 약가의 높은 비중만 보아도 그렇다.

정부당국이 국민을 오도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

약가대금 청구액이 총 의료보험 청구액의 30%라면 분명 잘못된 상황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적 수치일 뿐이다.

처치비 수술비 분만비 등을 비롯한 의사의 지식소유권에 속하는 행위비가
선진국 수준의 10~20%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국이 모른다는 것일까.

내년 7월에 실시 예정인 의약분업의 쟁점 사항중 하나인 신설 약사법 개정안
제23조만 보아도 그렇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의사가 처방전에 기재한 의약품을 약국에서 약사는 처방전
그대로 조제해야 한다.

그러나 처방전에 명기된 약품이 없을 경우 환자의 동의를 얻어 동일성분,
동일함량, 동일제형의 다른 제약사 약품으로 대체해줄 수 있다고 돼 있다.

약사가 의사의 동의 없이 환자의 동의로만 의사의 처방전에 따르지 않아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번 의약분업의 내용을 의사 약사간의 기득권 갈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가깝게는 의료소비자인 국민에게 주는 영향과 멀게는 그에
따른 국내 제약산업에 주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국내 약품시장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세계 10대 제약산업국이다.

질적인 면에서는 규모가 작은 제약회사들의 난립상태에서 유사 (copy)
제품이 범람하고 있는 허울 좋은 제약산업국가이다.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포르투갈 중남미제국
등에서 원료를 수입해 약품 모양새를 갖춘 저질 약품들을 유통시키고 있다.

약이란 원래 좋은 약만이 있어야지 "저질약품"이란 표현 자체가 쓰여지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내시장의 현실은 한 가지 품목에 동일성분을 가지고 있는 약품이
경우에 따라서는 1백여종, 보통은 30~50여종의 복사제품이 유통되고 있다.

이 가운데 몇몇 제품을 제외하고는 품질 면에서 심히 염려스러운 약품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저질일 수밖에 없는 값싼 원료를 사들여와 만든 약품들이 마진율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제과정에서 환자의 동의를 얻는다고는 하지만 저질의 약품이
건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환자에 투여되는 약품은 사치품목이 아니기에 비록 고가일지라도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최고의 약품을 처방해야 하는 것은 의사가 지켜야 할 윤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항간에서는 이를 의사와 제약회사간의 속칭 리베이트 문제로
몰아붙이면서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

최대의 피해자는 결국 저질, 그것도 아주 저질의 약을 복용해야 하는
의료소비자인 국민인데 말이다.

또다른 피해자는 값싼 저질약품의 범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고가일 수밖에
없는 제조기술과 원료를 쓰는 건실한 국내 제약회사들이다.

저질약이 범람할수록 그들은 경쟁력을 잃을 것이다.

마침내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후에 닥쳐오는 것은 외국제약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비싼 외국산 약품을 쓰게 되는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행정당국의 장기간 저약가 정책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이 이미
오래 전에 중단된 품종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보건행정당국이 내놓는 근래의 여러가지 시책은 국내 제약업계가 결국
붕괴돼 외국약품의 수입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큰데도 국내
제약업계가 "냉가슴 앓이"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건 행정당국에 건의한다.

의약분업에 따른 문제점들을 의사.약사 단체간의 단체이기주의에 의한
갈등차원으로만 보지 말라.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피해와 국내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sungnack@madang.ajo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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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독일 뮌헨대 의학과
<>프랑크푸르트대 의학 석.박사
<>연세대 의대 교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