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남부의 한 초등학교 교실.

미들랜드 은행의 벤처기업 담당 매니저 마이클 브래거씨가 교단에 섰다.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고 있는 강의 내용은 "벤처기업이란
무엇인가".

영국 정부가 최근 시작한 마이크로 소사이어티(micro society)라는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학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3주에 걸쳐 창업교육을
시킨다.

주로 사업가나 금융인들이 강사로 초빙된다.

미니 소사이어티(Mini-society)라는 미국의 어린이 벤처교육프로그램을
본딴 것이다.

마이클 브래거씨는 "어린이들에게 일찍부터 경제적 개념을 익히게 해주는
장점이 있고 장래에 엄청난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여기서 영국의 밀레니엄 전략중 중요한 대목이 드러난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고양이다.

기업가정신에 바탕을 둔 벤처기업의 창업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영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어렵다는 것이 영국정부의 판단이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 영국도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돼 있다.

대신에 그 부작용으로 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만성적인 실업이
정치 사회적인 짐이 되고 있다.

이에 엄청난 고용창출력을 갖고 있는 벤처기업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벤처기업은 큰 자본 없이도 지식 기술 창의력만 있으면 만들수 있는 기업
이다.

영국정부는 작년말 발표한 ''경쟁력 백서''에서 "기업가정신은 영국 신경제의
혈액"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국정부는 기업가정신 고취와 벤처기업 지원에 온갖
정책적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기업가정신 함양기금"을 창설해 벤처기업에 대한 융자보증을 해준다.

민관협력 프로그램인 "비즈니스 링크"를 통해 2001년까지 1만개의 신규
벤처기업을 발굴하기로 했다.

또 파산법 등을 개정해 사업에 실패한 벤처기업이 쉽게 재기할 수 있도록
하고 벤처사업가들이 사업실패로 신용불량이 되더라도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9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벤처기업 지원
을 위한 획기적 세금감면 방안을 내놓았다.

벤처기업 주식을 사서 5년뒤에 팔면 자본소득세를 현재의 40%에서 10%로
낮춰 준다는 것이다.

부가세가 17.5%, 근로소득세가 25-40%나 되는 영국에서 10% 세율이면 거의
면세에 가까운 혜택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벤처교육은 어린이 청년 장년을 가리지 않는다.

청년 벤처사업가를 양성하기 위한 영 엔터프라이즈 (Young Enterprise)
기금을 확대하고 있다.

성인들을 상대로 한 벤처창업 강의는 거의 모든 비즈니스 스쿨에서 진행
되고 있다.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이 강의시간에 발표한 아이디어가 그대로 사업이
되기도 한다.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 코스를 밟고 있던 리처드 다운스도 그런 학생중
하나였다.

그는 유럽의 5만개 스키장중 5백개만이 영국에 마케팅을 하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

이에 벤처기업론 강의시간에 인터넷으로 스키장을 선전하고 예약을 받는
회사를 만드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졸업과 동시에 동창생들 3명과 함께 IGLU.COM이란 회사
를 차려 1년만에 연간 현금흐름만 50만파운드(약 10억원)를 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처럼 벤처열풍이 불긴 하지만 영국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다.

우선 사회적 문화적 정서가 문제다.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한 복지국가의 제도에 익숙하다보니 위험을 감수하는
벤처기업을 꺼리는게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다.

그래서 자녀가 벤처기업을 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말리는 곳이 영국이다.

또 강한 엘리트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영국에서 사업가는 사회적 존경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정치인 관료 학자 언론인 문화계 인사쯤돼야 행세할 수 있는 분위기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귀족주의와 사회내에 팽배한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 또한
이런 도전정신을 가로막고 있다.

지난 9월 영국정부에 기업가정신 고취방안에 대해 컨설팅을 해준 런던
비즈니스스쿨 폴 레널즈 교수는 "금융 세제 등 제도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요소가 벤처 기업가정신 고취에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국에서 기업가정신 연구로 정평이 난 밥슨 칼리지(Babson College)
의 벤처기업 연구소장을 지낸데다 미국인이어서 영국의 단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이다.

이런 레널즈 교수의 처방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처럼 능력에 따른 소득격차를 사회가 인정하고 창업하는 사람을 존경
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벤처정신 고취전략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런던=안상욱 기자 sahn@lbs.ac.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