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지배할 나라는 어디일까.

19세기는 영국, 20세기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쥐었다.

그렇다면 다음 세기의 패권은 어디로 갈까.

이같은 질문에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로선 미국의 위세를 꺾을 만한 강대국의 부상을 점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전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여기엔 "테크노 헤게모니"란 시각이 깔려 있다.

그 시대의 핵심적인 첨단기술을 먼저 보유한 나라가 국제관계에서 패권을
장악한다는 것.

기술은 곧바로 경제력과 군사력에 직결돼 있다.

기술이야말로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잡게 해주는 열쇠라는 논리다.

실제 과거 역사를 봐도 독일 영국 미국 등 패권국들의 부상은 당시의
첨단기술 보유와 궤를 같이 했다.

21세기 세계질서 또한 미래 핵심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해 보유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란 얘기다.

<> 팍스 아메리카나의 생명력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후 냉전체제 동안 미국은 자유세계의 맹주로 자리를 굳혔다.

89년 소련과 동유럽 붕괴이후엔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남았다.

그 배경엔 역시 컴퓨터 항공우주 등 핵심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군사력이
숨어 있다.

게다가 1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의 경제호황은 미국의 영광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특히 정보기술(IT)에서의 절대적 우위는 미국의 자신감을 더해준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가 세계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한 것은
단적인 예다.

지난 5년동안 정보화 기술분야는 미국의 실질 경제성장의 3분의 1 이상을
떠맡았다.

일부에선 정보화 기술혁신을 전기발명에 견주기도 한다.

1876년 발명된 전기가 미국의 생산성 향상에 구체적으로 기여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50년뒤인 1920년대였다.

때문에 아직도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컴퓨터 기술혁신은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야 완전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최소한 한 세대(2030년)까지는 미국의 주도가 확실시 된다"
(이진주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미국은 21세기에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전체 예산중 과학기술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지난 96년 3%
에서 내년엔 5%로 올리는 것을 진작부터 추진했다.

2015년까지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건설도 완료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민간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21세기 연구기금"
조성을 추진중이다.

올해 3백11억달러를 모았고 오는 2003년엔 3백80억달러를 조성할 계획.

첨단 과학기술분야에서 세계 1등국의 지위를 유지해 패권국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 포스트 팍스아메리카나

미국 이후의 강대국 1순위 후보로는 중국이 가장 많이 꼽힌다.

엄청난 시장 잠재력과 군사기술 기반을 가진 중국이 미국에 대항할 만한
제2의 패권국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중국은 잠에서 깨어난 사자다. 아편전쟁이후 개혁을 시작한 이래 가장
좋은 여건에서 경제발전을 할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중국 전문가
이홍영 미국 버클리대 교수)

특히 최근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키로 함에 따라 중국의 잠재력
은 조만간 현실화될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의 견제세력으로 개도국들이 대거 중국을 지지하고 나설 경우
그 힘은 더욱 세질수 밖에 없다.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 세계질서가 다극화의 길을 걸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정보화 지식화가 크게 진전되는 21세기엔 세계질서가 다극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연간 매출은 웬만한 나라의
국민총생산(GNP)과 맞먹는다. 따라서 어떤 나라에 빌 게이츠와 같은 사람이
몇명만 등장하면 그 나라는 금새 강대국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국가가 세계질서를 아우를 패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강박광
호서대 교수)

이런 견해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과도 일치한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경제도 80년대말 일본처럼 지나치게
부풀어 오른 나머지 거품이 터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유럽과 중국의 경제력이 확대되면서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미 유럽연합(EU)과 러시아는 중국과의 연계를 통한 미국 견제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 21세기 테크노 헤게모니의 열쇠

그렇다면 새천년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핵심 기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선 많은 전문가들이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정보통신 바이오 환경 에너지 기술 등이 그것.

지난 89년 "테크노 헤게모니"란 책을 발간한 일본 게이오기슈쿠대학
야쿠시지 다이조 교수는 "21세기 패권을 좌우할 핵심기술은 생명공학 환경
에너지 등 인간생활에 관계되는 소프트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에너지 환경 정보통신 우주 교통) 일본(정보기술 생명 우주 에너지)
프랑스(환경 통신 생명과학 소프트웨어) 영국(환경 우주 에너지 금융서비스)
독일(정보.전자 소립자 생명과학 해양 우주) 등 선진국들이 2000년대 초반
주력하기로 정한 과학기술 분야를 살펴봐도 마찬가지 결론이다.

이들 나라들은 이미 21세기 생존을 위한 과학기술개발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한국은 기술이 주도하는 산업화 시대에 낙오해 임진왜란과 한.일합방이란
국난을 당했다. 정보화 사회 도래에 대한 대비가 늦어져 IMF 사태를 맞았다
고도 할 수 있다. 다가오는 새 천년에도 기술과 지식주도의 세계질서 확립은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물결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나름의 기술개발 전략을
짜고 부단히 추진해야 한다"(강박광 교수)

< 차병석 기자 chab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