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현재의 사법연수원을 국립 로스쿨 (Law School) 로 대체하는 것으로
2차 사법개혁 개선안이 확정됐단다.

21세기를 맞는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발상의
계속이다.

전관 대우 관례는 이 나라의 사법제도를 굴절시켰고 판사 검사 변호사의
밀착은 사회정의를 왜곡시켜 왔다.

이런 고질적인 법조 폐해를 막으려면 법조인들의 구성 자체를 다양하게
하고 서로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처음부터 없애야 한다.

만일 사법개혁위원회 개혁안대로 된다면 이 나라의 법조인 모두가 여전히
학부와 로스쿨 도합 6년동안 "법"만 공부하고 같은 "국립 로스쿨"에서 동문
수학한 선후배가 되고 만다.

그래 가지고는 사법개혁이 진정 언제 가능해지겠는가.

지금은 다양성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시대이다.

세계는 좁아지고 모든 것이 국제화됐다.

이 다양한 국제사회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법률전문가를 기대하려면 새
천년의 법학 공부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을 전문가로 양성해야 한다.

그런데 새 개혁안에서 국립 로스쿨 학생으로 법대생이나 일정 학점 이상의
법학과목 이수자 가운데에서 뽑고 다시 2년간 법률공부만 시키겠다니 앞뒤가
꽉 막힌 법조인만 양성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법조인 교육을 정부가 전담한다는 생각 자체가 전근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이제는 정말 미국식 로스쿨 제도의 도입을 생각해 보자.

미국은 땅도 넓고 인구 2억4천만명이 전 세계의 이민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그런데도 법치주의가 실현되고 있고 민주정치체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명실공히 세계 대국이 된 나라이다.

왜 그럴까.

미국 얘기만 나오면 원초적으로 거부 반응을 갖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을 너무나도 모른다.

미국이란 나라는 식민지로부터 스스로 독립한 지 불과 1백년만에 종주국이던
영국을 미국 땅에서 내쫓은 것은 물론 그 방대한 땅을 차지하려던 프랑스
스페인을 몰아내고 대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세계 강대국들과 싸워 이겨서 오늘의 강국을 쟁취한 것이다.

영어로 "They earned it"이다.

그런 미국에는 변호사도 많고 로스쿨도 많다.

법조인들끼리 서로 야합할 가능성이 배제돼 있다.

처음부터 로스쿨이든 법과학생이든 무한경쟁체제로 갔기 때문이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지만 미국에는 로스쿨도 1백30개가 넘고 변호사 숫자도
80만명이 넘어 인구 3백명당 법조인이 하나일 정도다.

이렇게 변호사도 많고 출신 학교도 가지가지이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
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법조인처럼 선배 후배 하면서 밀착될 틈이 없다.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사법대학원이든 국립 로스쿨이든 한 학교의
동창생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21세기를 살면서 아직도 국립을 생각하다니.

잡종강세는 생물학의 원리이고 자유경쟁은 경제학의 진리이다.

법률시장도 자본주의의 경제원칙에 따라 무한경쟁 원칙대로 능력없는 자,
게으른 자는 자연도태돼야 한다.

일생에 단 한번 사법시험에 합격됐다고 평생 편안한 생활이 보장돼서는 안
된다.

미국에선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학부 4년을 마쳐야 한다.

적어도 "사람"을 다루는 직업인 법조인이 되려면 학부를 끝낸 정신적 육체적
"성인"이 돼야 한다.

고등학교를 겨우 나온 젊은이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입신양명하고 권력잡고
출세하는 수단으로 "법"을 공부하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진정한 사법개혁은
어렵다.

로스쿨 학생들은 학부 전공부터 다양하기 그지 없다.

학업 성적이 좋은 이상 학부 4년 동안 무엇을 공부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운동선수 보험인 공인회계사 기술자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 사회경험이
많은 학생도 적지 않다.

로스쿨은 학부 학생때부터 지식으로서의 "법"을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인인 직업학교 학생들에게 법조인으로서의 사고력을 가르칠 뿐이다.

오늘날 미국 변호사들은 미국내뿐만 아니라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 일본 유럽 각지를 휩쓸고 있다.

미국 변호사만이 환경 생명공학 금융 통상 부실채권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다양한 국제사회의 복잡한 법률문제를 전문 지식을 갖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변호사 자격증 하나만 있으면 특허사건도, 복잡한 세법사건
도, 무역 국제 통상사건도 다 다루고 있다.

법 만능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저 넓은 밖의 세상 일은 모르고 한반도라는 작은 우물안에서 각자의 밥그릇
크기만을 걱정해 온 탓이다.

6년동안 계속 법률만 공부하는 "법"전문가를 "한 교정안에서" 대량 양성하겠
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일 뿐이다.

다시 한번 사법제도의 개혁 방향을 따져보아야 한다.

< leet@wintim.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