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동영상기술 17건 세계표준으로 채택"

99년 11월 25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 주요기사 제목이다.

이날 기사에는 "삼성전자가 개발한 디지털 동영상(MPEG) 기술 17건이 이
분야 세계표준화기구에 의해 표준규격으로 채택됐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기사는 또 "삼성전자는 이에따라 2000년대 초반 연간 3천만-4천만달러의
로열티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하고 있다.

이 기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삼성의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엄청난 돈을
벌게 됐다"는 것을 전달하려는 것일까.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이날 기사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로 21세기에 벌어질 "글로벌 스탠더드 전쟁"의 거대한 트렌드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 국경을 뛰어넘는 표준 경쟁

야후(Yahoo!)의 사례를 들어보자.

야후는 인터넷의 대명사로 통한다.

야후라는 검색엔진이 나오면서 인터넷은 대중화됐다.

야후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는 "지도"다.

대만계 미국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라는 스탠퍼드대 학생 두사람이
94년 처음 선보인 야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터넷 검색엔진이
됐다.

무엇이 야후를 세계 최고의 인터넷 회사로 만들었을까.

흔히 마케팅 이론에서 얘기되는 "부르기 쉽고 잘 외워지며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인 "야후" 브랜드가 성공요인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선점이었다.

"표준"은 국경의 한계를 뛰어 넘어 세계 어디에서나 통한다.

야후는 가장 먼저 시작함으로써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을 장악
했다.

"최초"라는 강점을 안고 "최고"로 올라선 것이다.

야후 이후 엑사이트(Excite) 라이코스(Lycos) 인포시크(Infoseek)
알타비스타(Altavista) 등 편리한 검색엔진이 잇따라 등장했다.

그러나 결코 어느 것도 야후의 자리를 넘보지는 못했다.

21세기 세계 경제질서의 키워드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기업이든 국가든 누가 먼저 표준을 장악하느냐가 곧 성패를 좌우한다.

19세기 미국의 남북전쟁때 북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는 바로
무기 부품을 표준화한 것이었다.

호환성이 높은 소총을 개발함으로써 무기의 기동성에서 남군을 압도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무대에서도 호환가능한 것만이 살아 남는다.

제품 서비스 문화 그 어느 것도 세계표준을 무시하고는 발 붙일 곳이 없다.

미국식 이사회, 국제회계기준(IAS), 인터넷 상거래, 연봉제, 건전한 금융
거래 관행, 저작권보호 등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조류로 통하는 것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 표준전쟁의 승자와 패자

세계 표준 전쟁에는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일본 기업들은 고선명(HD) TV를 80년대 후반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했다.

하지만 이 기술을 먼저 상용화한 곳은 미국 기업들이었다.

일본의 기술개발에 놀란 미국 기업들은 90년대 들어 자신들이 주도가 돼
HDTV의 세계 표준을 제정해 버린 것이다.

당연히 일본 기업들은 후발주자로 전락할 수 밖에.

기술 우위보다는 세계 표준의 장악 여부가 더욱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표준 전쟁의 승패사례는 또 있다.

VTR 시장에서 소니를 따돌린 마쓰시타의 승리가 그것이다.

VHS 방식의 마쓰시타가 경쟁업체들과의 연합을 통해 소니의 베타방식을
도태시킨 사례다.

표준 전쟁에는 국가도 예외일 수 없다.

유럽연합(EU)은 휴대전화의 경우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이라는 유럽규격을 전세계 1백10개국 이상에서 사용케
함으로써 미국 일본 등에서 추진하던 규격들을 제치고 사실상 국제표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GSM 방식의 휴대폰이 세계 이동전화 전체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 밀레니엄 스탠더드

20세기 표준전쟁이 주로 기술방식을 놓고 벌어졌다면 21세기에는 그야말로
전방위에 걸쳐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기술의 표준을 선점하려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글로벌 스탠더드는 서비스 문화 기업경영 정보공개
저작권보호 온실가스규제 등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지배적인 화두로 등장할
전망이다"(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이사)

요컨대 기술부문에서는 새로 등장하게 될 미래 첨단기술에 대한 표준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차세대 이동통신으로 불리는 IMT-2000이나 차세대 전기자동차, 인터넷
전자상거래, 초미세 가공기술, 의료및 생명공학 등의 분야에서는 표준
전쟁이 불붙고 있다.

서비스 교역 등의 부문에서는 이미 미국과 EU가 주축이 돼 사실상의 세계
표준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 창설에 합의하고 표준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표준에 뒤떨어졌다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예컨대 양궁이 그렇다.

양궁은 서양이 만든 스포츠지만 한국은 서양이 정한 룰(표준)에 적응하면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어떤 분야의 표준이든 잘 익혀 국제경쟁력을 키우는데 활용하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 정종태 기자 jtchun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