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스크린에 다시 섰다.

"배트맨과 로빈"에서 악당 프리즈 박사로 나온이후 2년반 만이다.

그동안 심장수술 뒤의 부담으로 영화출연을 자제했었다.

슈워제네거의 스크린 복귀작은 4일 개봉되는 "엔드 오브 데이즈".

요한계시록의 인류종말 예언을 따다 이야기를 구성한 아마겟돈식 영화다.

그가 맡은 역할은 인류를 종말의 위험에서 구할 세기의 영웅.

새 밀레니엄을 암흑으로 뒤덮어 지배하려는 지하세계의 사탄과 정면대결을
벌인다.

사설경호원 제리코(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술에 절어 내키는 대로 산다.

전직 형사였던 제리코는 자신이 가정을 소홀히 한 탓에 아내와 딸을 잃었다
는 자괴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 제리코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터진다.

밀레니엄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다투는 99년 12월28일.

사탄이 한 신부(가브리엘 번)의 몸을 빌려 뉴욕 거리에 나타난다.

사탄은 한 처녀의 몸에 자신의 씨를 뿌리려 한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기 전 한시간 사이 그 처녀를 잉태시켜야 한다.

그러면 지옥문이 열리고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탄의 짝으로 운명지워진 이 처녀는 스무살의 크리스틴(로빈 튜니).

금융계의 거물 행세를 하며 크리스틴의 행방을 쫓는 사탄의 경호를 맡게 된
제리코는 호텔앞에서 사탄을 저격하려다 실패한 한 신부의 뒤를 캐다 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제리코는 한발 앞서 만난 크리스틴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한 사탄의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영화는 종교적 믿음과 종말 등의 무거운 주제를 슈워제네거의 근육질 액션에
얹었다.

그러나 현란한 액션 위주의 볼거리에 집착, 주제의식이 희석돼 버려 균형을
잃고 말았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들도 멋적다.

사람 몸에 들어가기 전의 사탄은 슈워제네거 자신이 출연했던 "프레데터"
(Predator)의 외계인 모습과 똑같다.

슈워제네거가 마지막 싸움에서 힘의 한계를 느끼고 사탄을 자신의 몸 속으로
불러들여 자살하는 장면은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킨다.

기독교계에선 사탄의 표식으로 여기는 숫자 666을 999로 비튼 것도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1999년인 올해가 바로 종말의 해라는 점을 부각시켜 극적인 효과를 더
높이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영화의 분위기만 가볍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 범주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 비논리적이고 상투적인 상황으로 엮은 점도
아쉽다.

사탄이 성당에까지 들어오게 한 설정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탄은 사람의 몸을 통해서만 조화를 부리고 또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능력을 발휘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슈워제네거가 모처럼 연기한 근육질 액션에만 한정해서 보면 2시간여
동안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다.

"2010" "레릭" "서든 데스"의 피터 하이암스가 감독에 촬영까지 맡았다.

< 김재일 기자 kj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