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12월3일 국제통화기금(IMF)은 벼랑 끝에 몰린 한국에 5백70억달러를
긴급 수혈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년이 조금 못된 지난 11월19일 김대중 대통령은 "1년 반만에 IMF
외환위기를 완전히 이겨냈다"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가 단두대에 올랐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 98년 2월4일)던
해외의 시각도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괄목할만한 경제회복을 이룩했다"
(미국의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 99년 11월5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각종 경제지표들은 IMF체제 이전 수준을 회복하거나 웃돌고 있다.

지난해 마이너스 5.8%까지 떨어졌던 경제 성장률은 올 상반기 7.3%로
반등했다.

3.4분기에는 12.3%로 뛰어올랐다.

"기술적 반등" 수준을 넘어 과열을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작년 7.5%나 급등했던 소비자 물가는 올 10월까지 0.7%에 머물고 있다.

국제 수지는 2년 연속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며 위기 탈출에 기여했다.

지난해 2월 1백78만명에 달했던 실업자 수는 지난 10월 1백2만명으로
줄었다.

경제가 활기를 되찾으면서 금융시장과 주식시장도 빠르게 안정됐다.

IMF 구제금융 초기 30%까지 치솟았던 회사채 금리는 현재 10%를 밑돌고
있다.

97년말 주가지수 376까지 폭락했던 주식시장도 1,000포인트를 오르내리고
있다.

기업경영 측면에서도 위기는 옛말이 돼 버렸다.

물론 가혹한 구조조정을 겪은 결과이긴 하지만 올 상반기 제조업 매출액중
경상이익률은 4.2%를 기록해 95년 상반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어음부도율도 대우사태 이후 대우 협력업체의 부도로 최근 다소 높아졌지만
이를 제외할 경우 0.1% 내외로 낮게 유지되고 있다.

이같은 금융 및 실물부문의 회복세에 힘입어 제2의 외환위기에 대한 우려도
가시고 있다.

97년말 89억달러에 불과했던 가용외환보유고는 지난 2년간의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에 힘입어 11월15일 현재 6백84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97년말 6백36억달러에 이르렀던 단기외채 규모도 올 9월 현재 3백50억달러로
줄었다.

이에 따라 대외채무 중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54.2%에서 24.8%로
감소했다.

현재 외환보유고는 단기외채의 2배이며 만기 1년 이상인 장기외채까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외환위기의 재발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여러 지표를 종합하면 한국에
제2의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것이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분석이다.

IMF는 한국 경제에 대해 "우등국"이란 성적표를 주고 있다.

해외 신용평가 기관들도 인색함을 벗고 한국의 경제회복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무디스와 S&P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4~5단계씩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이같은 장밋빛 지표의 이면엔 가시들이 도사리고 있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한국은 "빚더미 공화국"으로 전락했다.

나라 빚은 97년말 63조7천억원에서 올해말 1백1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연간 이자로 지급하는 돈만 6조원이 넘는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통계청의 올 2.4분기 도시가구 소득조사 결과 고소득층은 IMF체제 이전에
비해 소득이 3.4% 늘어난 반면 중.하위층은 14.5%까지 줄었다.

고용구조도 악화됐다.

실업률이 5% 미만으로 떨어졌지만 일용근로자 비중은 97년 9월 14.6%에서
최근엔 20%로 대폭 높아졌다.

뿐만 아니다.

한국 경제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중산층이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의 비중이 외환위기 직전 63.7%에서 올해엔 38.4%로 2년 사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경기회복과 주가급등에 힘입어 과소비가 재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가계소비증가율은 7.7%를 기록해 2년전 소비수준의 96.1%를
회복했다.

거리엔 다시 자동차 행렬이 이어지고 백화점도 쇼핑객들로 북적댄다.

곳곳에서 터뜨리는 샴페인 소리가 요란하다.

여기에 인플레 망령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급속한 경기회복과 국제유가 불안 등으로 내년 이후 물가안정 기조가 깨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저금리와 재정확대에 치중한 대가다.

IMF 체제가 단순히 유동성 부족에서 기인한 "외환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30여년간 급속한 성장페달을 밟아오면서 간과했고 혹은 애써 외면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의 합작품이다.

IMF 체제의 극복이 그러한 시스템 상의 결함을 해결하는 계기여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국민들의 이같은 인식을 보여준다.

IMF 위기의 완전 극복을 1백점으로 할 때 현재의 극복 정도를 묻는 설문
에서 일반인들은 평균 45.1점을 매겨 위기의 극복을 아직 요원하게 느끼고
있음을 반증했다.

IMF체제 2년 성적표에 대해 전문가들도 대체적으로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를 내린다.

위기가 곧 기회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지 못하면 그 위기는 "위기"의 가치가 없다.

가치가 없는 명분에 2년동안 매달려 왔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다.

위기는 새로운 성장엔진의 원료가 돼야 한다.

여기에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에 대한 반성도 포함된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이 여섯가지 기준에 따라 평가한 IMF체제 극복 정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평가에 따르면 외환유동성은 올해 완전히 극복됐다.

실물경제 회복도 건설투자와 설비투자가 약간 못미치지만 내년중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전망이다.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처리 역시 늦어도 내년까지 마무리된다.

대외 위상은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2~3년 후에 최고 등급으로 꾸준히 상향 조정될 여지가 충분하다.

제도적인 경제시스템 개혁이 관행으로 정착되기까지는 5~6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IMF체제 극복의 궁극적 단계인 새로운 성장엔진 부분은 아직 답이
없다.

답을 찾아나서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 유병연 기자 yooby@ked.co.kr 박민하 기자 hahaha@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