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진앙지다.

97년 7월2일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다.

바트화가치는 하루에 20%나 폭락하며 태국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아시아와 세계 금융위기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지금 태국경제는 언제 그랬느냐는듯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월 타린 님마해민 태국 재무장관은 IMF로부터 배정받은 구제금융
인출을 중단키로 했다고 발표, 태국이 IMF 체제하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났음을
보여 줬다.

당분간 IMF가 처방한 경제개혁계획은 밀고 나가겠지만 총 1백72억달러의
구제자금중 그동안 인출하고 남은 32억달러에 대해서는 인출을 요청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환란의 첫 희생자였지만 개혁의 기치아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힘차게
해온 결과다.

2년전 바트화 폭락사태는 무역적자가 많은 데도 달러당 25바트의 고정환율
을 유지해 온게 화근이었다.

여기에다 외채가 누적되고 부동산 등에 돈이 몰리면서 거품이 한껏
부풀려졌다.

이처럼 바트화가 고평가돼 있는 상황에서 헤지펀드의 집요한 공격이
가해지자 경제가 맥없이 무너졌다.

결국 태국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IMF체제 아래 새로 출범한 추안 릭파이 정부는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경제를 살려놓은 일등 공신.

추안 총리가 취임한 후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부실금융기관 정리였다.

제2금융권 58개사중 56개를 한칼에 날려버렸다.

또 15개 시중은행 가운데 5개를 국유화하거나 국영은행에 합병시켰다.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는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한 금융재편청도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이 추안정부가 출범한 뒤 3개월안에 이뤄졌다.

이같은 과감한 조치는 해외투자자들이 태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금융기관을 폐쇄하자 외국자본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게 증거다.

방콕은행과 타이농민은행 등 은행들도 외자 유치에 나섰다.

시암상업뱅크 등 3개 은행은 외국과 합작했다.

또 총리를 비롯한 모든 각료들이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 열심히 뛰었다.

이렇게 형성된 외환보유고는 10월말 현재 3백24억달러로 충분한 수준이다.

한때 달러당 57바트까지 올랐던 환율도 지금은 38바트선에서 안정돼 있다.

태국정부는 국제투기자본에 의한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역시
바트화 구조가 튼튼해져 걱정없다는 태도다.

지난 여름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가 바트화를 1억8천만달러어치나 매각하며
환공격에 나섰으나 태국은 "이번엔 어림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경제성장 전망도 밝다.

IMF의 태국 담당자는 최근 내년 3~4%의 성장을 기록한 다음 2001년에는
성장률이 5~6%에 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경제가 완전하게 본궤도에 올랐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해외자본 투자가 IMF 관리체제 이전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40%
수준으로 늘어나지 않아 경기부양에 자극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이 끊임없이 쓰러지면서 늘어난 실업자 문제도 심각하다.

97년에 1.9%에 불과했던 실업률이 지금 4%대를 넘어섰다.

금융부문도 아직 취약한 구석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아시아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은행 및 기업 부문의 금융 문제이며 실질적인 진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 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