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체제 2년간 한국경제에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금융계와 산업계에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일어 수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정리됐다.

살아남은 기업들간에도 빅딜이 추진돼 산업계의 판도가 뒤바뀌었다.

그 소용돌이로 대규모 실업사태가 벌어졌고 이는 빈부격차 확대로
이어졌다.

상전벽해와도 같았던 지난 2년간의 변화를 5대 사건으로 정리해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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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는 IMF체제 이후 다른 기업들과 달리 더 공격적으로 사업확장을
추진했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기세였다.

대우의 이같은 전략은 한동안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년 10월 일본의 노무라연구소가 대우그룹의 재무구조에 적신호를
울리면서 상황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은행 등을 통한 자금차입이 끊긴 상태에서 회사채와 기업어음 발행으로
버텨왔으나 이마저도 한도가 제한돼 자금난이 가중됐다.

다급해진 대우는 뒤늦게 계열사 매각 등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세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 7월에는 김우중 회장의 사재를 포함한 10조원 규모의 담보제공 대가로
4조원의 신규자금을 지원받았으나 이 역시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결국 채권단은 8월26일 (주)대우 대우자동차 대우전자 대우중공업 등 핵심
12개사를 대상으로 워크아웃 작업에 들어갔다.

채권단은 대우 계열사를 독립기업으로 살려 매각하기위해 57조원의 부채중
출자전환, 이자감면 등으로 31조원의 채무조정을 단행키로 했다.

이같은 대우의 워크아웃 계획이 성공한다면 한국경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연구사례가 될 법하다.

부실규모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한편 대우사태의 처리과정에서는 투신사 환매제한조치로 인해 "11월
금융대란설"이 유포되기도 했다.

대우 관련 채권의 지급비율이 80%로 높아지는 시점을 기해 수익증권의
대량환매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

다행히 지급비율 확대를 앞두고 정부가 사실상의 공적자금을 동원한
시장안정대책을 내놓아 대란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적자금 투입의 정당성 여부를 두고 앞으로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임혁 기자 limhyuck@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3일자 ).